따뜻한 그늘

꼼뿌레샤

Magazine X 2021. 8. 20. 09:44

compressor 연작. 2017. 권해일

대도시는 정글 같아서 누가 더 높고 큰 건물을 많이 차지하느냐에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다. 사진가는 그 정글의 탐색자로서 역할을 한다. 그곳은 누가 얼마나 더 치열하게 파괴적이며 공격적인지 경쟁을 하는 곳이다. 누추한 집들을 뭉개버리고, 그곳에 콘크리트와 철근이 엮이면서 높은 건물이 세워진다. 어제의 천장이 오늘은 바닥이 되면서 위로 거침없이 솟아오른다. 그곳에 노동자들이 붙어서 일을 한다. 붙어서라는 어감이 좋지 않으나 노동자는 여전히 그런 여건에서 일을 한다. 85년 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의 컨베이어 앞에서 쉴 새 없이 나사를 돌리는 노동자나 지금의 노동자나 입장이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권해일이 말한 꼼뿌레샤(compressor)는 컴프레서(압축기)의 부산식 발음이라고 한다. 굳이 그렇게 이름을 붙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의 카메라는 건물의 정면이나 위에서 바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옆과 위에서 내려찍듯이 바라본다.

 

권해일은 완성되기 이전의 건물에 초점을 맞춘다. 멀리서 보면 문양 좋은 카펫을 엮어가는 것도 같고 기하학적 회화 같기도 한 풍경 안에 노동자의 모습은 성냥개비 크기만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그렇게 작은 모습이다. 노동자들은 이 건물의 소유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대도시가 아파트나 거대 건물로 메워질수록 그것에 종속되는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억압과 착취가 자행되며 서로를 경쟁자로 바라보는 비정한 공간이기도 하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