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롱 속에 오래된 이불이 맨 아래층에 깔려 있었다. 무거운 솜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알록달록한 나일론 합성 천이었고 이불 홑청은 옥양목에 작은 꽃무늬가 있는 것이었다. 이불은 버리고 홑청은 남겨두었다. 천에는 가끔 다듬잇방망이에 엇맞아 구멍이 난 곳도 있었다. 옥양목은 투박한 무명보다 발이 가늘어 인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멋을 내느라 꽃무늬까지 새겨둔 것이다. 면이나 모시는 천연섬유이기 때문에 빨아서 다리는 것보다 풀을 먹여서 발로 밟거나 다듬이질을 해야 윤이 났다. 밤낮으로 여성의 노고가 더 많이 요구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옥양목 이불 홑청을 보면 가난했던 청소년기의 생각이 떠오른다. 어찌어찌해서 집을 한 칸 마련한 우리는 겨울에 땔 연탄이 부족했다. 그래서 겨울에도 불을 안 때고 자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옥양목 홑청에 풀을 빳빳이 해서 반들반들하게 해놓곤 한다. 선득한 이불 홑청은 어깨를 감싸주기는커녕 외풍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와 발끝까지 시리게 했다.
요즘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명색이 사진작가인데 그동안 집 안에 내가 찍은 사진 한 장 걸어두지 않았다. 팔리지도 않는 사진은 은박지나 박스에 쌓아둔 것이 산더미인데 사진 한 장 걸어두고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번 겨울에는 내 방에 정을 좀 붙이기로 했다. 초기 작업의 흑백사진인데 전동성당과 풍남문을 찍은 것으로 세피아 조색까지 해서 마음에 들었다. 사진 두 장을 벽에 붙이고 나니 점차 욕심이 생겼다. 이불 홑청이던 꽃무늬 옥양목으로 커튼을 만들어 달았다. 그 옆에는 러브체인도 걸어두었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