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강물이어라

Magazine X 2020. 10. 30. 14:55

영산강연작. 2020 ⓒ김지연

강은 바다와 달리 넓고 깊지 않아서 쉽게 젖어든다. 강물은 흐르기에 애써 담아두지 않아도 된다. 가을이 되니 강변에 억새풀이 장관을 이룬다. 석양으로 기우는 햇볕을 받아 은빛 머리처럼 나부낀다. 여름에는 억새풀이 어찌나 사나운지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사이를 지나가노라면 피부가 씻기어 따가웠다. ‘뱀 주의’라는 팻말을 보며 몸이 오싹오싹 떨렸다.

 

물새 한 마리가 강물 위로 날고 있다. 강물은 흐르는 듯 멈춰서는 듯 여유롭게 보였다. 강물의 이러한 유유자적함 때문에 나는 강물이 지닌 난폭한 성정을 잊을 뻔했다. 잊을 만하면 삶을 위협하며 넘쳐 오르던 홍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나는 그저 새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수면 가까이로 다가서는 몸짓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며 무생물들의 조화를 알지 못한 채 그것이 강이려니 하는 것이다. 은어, 붕어, 잉어, 피라미, 납자루, 메기, 가물치, 모래무지, 뱀장어, 숭어 그리고 조개와 새우, 이끼 등을 보지 못한 채 오직 새 한 마리가 물 위에 날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강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보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저 생명들이 그 품 안에 있다는 것을 경험과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한결같이 그럴 것이라는 믿음은 언젠가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새롭게 인식하고 살피는 깊은 눈을 가져봐야겠다. 한 마리의 새와 물이 강이라고 정의하는 나의 가벼운 생각이 스스럽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