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소녀의 파라솔

Magazine X 2020. 9. 18. 11:03

한영수. 서울 마포강변. 1958.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사진은 방황하는 시간 속에 있다. 어떤 ‘결정적 순간’을 잡아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기다림의 결과인 것이다.

 

한영수 선생의 사진을 만난 지가 제법 되었는데도 그저 잘 찍는 사진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여러 사진을 묶은 사진집을 보게 되었는데 그동안 유명 외국 작가만 살피면서 그들을 아는 것이 지식이라고 여기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선생의 사진은 대부분 1956년부터 1963년에 찍은 것으로 한강, 뚝섬, 청계천, 마포 등지의 모습과 당시 서울의 세시풍속을 촘촘히 담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10여년 사이의 모습이다. 얼마나 폐허와 절망 속에 있었을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시기이다.

 

그런데도 선생의 사진 속의 삶은 흐르는 강물 같다. 흐르다가 막히면 돌아가면서 바다에 이르는 꿈을 놓치지 않는다. 어린 소녀가 엄마의 양산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한 마리의 새가 비상을 하려고 날개를 펴는 것 같은 긴장감을 주면서 광주리 안에 있는 모자 쓴 아이의 흙 놀이에 시선을 두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세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경쾌한지 마치 조정선수들 같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기록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예술성을 강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흐르는 시간의 진수를 빼어난 감각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선생의 사진이 다큐멘터리에 속하면서도 세련된 구도와 초월적인 감성으로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이유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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