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밤의 집

Magazine X 2021. 12. 17. 09:42
 
‘밤의 집’ 연작. 2021. 송은영

집이라는 개념이 아파트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특별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가난한 서민이 사는 집을 연상하게 된다. 대개의 단독주택들은 무채색이다. 원도심의 숨통을 막아 놓고 고사시키는 도시의 변화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점령한 신대륙 정복자들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고층 아파트를 대비시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가들은 밤에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낡은 주택가의 밤 풍경은 낮에 보이는 누추하고 볼품없는 것들로부터 자유롭다. 낡은 주택이 지닌 시간 속에는 인간의 사랑과 연민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 주택가의 모습은 침입자 혹은 탐색자에게 조금의 힌트를 준다. 지금 필사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아파트 이전의 집이야말로 공동체의 미덕과 가족들의 희생과 배려가 담긴 곳으로 오늘날 번영의 기틀이 된 곳이라는 것을. 지금은 도시 어느 곳에 이런 집이 남아 있으면 그곳을 뭉개서 도시 전체를 아파트화해 버리려고 한다.

송은영 작가의 ‘밤의 집’은 거대도시가 남겨 놓은 마지막 피식자(被食者)같다. 아니 포식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어 있는 은자의 집이다. 그래서 집이란 원래 이런 것이었다고 화석에 새겨 놓은 그림 같다.

송은영은 미술전공자였기에 다큐멘터리 사진에 자신만의 특수성을 살렸다. 낡은 주택 위로 떨어지는 조명에 색을 더해서 독특한 존재감을 만들어 낸다. 그녀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토록 살갑고 혹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색깔은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낡고 작은 집에 대한 헌사이기도 할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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