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미래의 건축은 땅에 지지대만 세운 채 높은 공중에서 살도록 설계되며, 아파트만 한 크기의 건물도 이동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가 매우 비싸지만 아파트 때문에 분신자살한 사람도 없고 그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경남 밀양의 시골마을에서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서 다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이 있다. 자기네 터를 지키기 위해서 주민들이 목숨 걸며 십여 년이 훨씬 넘게 싸워왔다.
뉴스를 보고 찾아갔던 이재각은 사진 찍기가 송구스러워 몇 년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송전탑건설 반대에 참여하게 되었다. 컵라면과 고구마와 찬 밥덩이를 나누어 먹고 ‘이 노래를 부탁해’라는 노래도 불렀다. 2014년 산 위에서 움막을 치고 농성을 하던 늙은 주민들은 공권력에 의해 질질 끌려 내려왔다. 그런 참담한 일이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농민들은 다음날 삽과 호미를 들고 논과 밭으로 나가서 일을 했다. 이재각은 말한다. “거대한 철탑과 공권력을 지워내면 평범한 시골의 정겨운 풍경들이다. 이를 어지럽힌 국가가 자행한 가장 큰 폭력은 안타깝게도 사진 속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그 시절에도 보리는 익어가고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고 있다.
내가 사는 땅에서 농사를 짓고 평범하게 살아 갈 자유마저 빼앗긴 곳은 밀양뿐만이 아니라 사드배치 지역으로 지정된 주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투쟁의 가치와 함께 훼손된 마을 공동체가 복구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이재각의 보리밭은 오늘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