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여인숙

Magazine X 2020. 11. 13. 11:35

영산강연작. 2020. 김지연

영산포에 갔더니 홍어거리가 있고 오래된 일본인 가옥들이 눈에 띄었다. 영산포가 주요 포구가 된 것은 목포가 개항되고 일본인 미곡상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지금은 영산포 선창이 옛 풍경을 잃었지만 선창가 홍어집들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구시가지는 조용했고 영산포 극장은 옛 영화를 잃고 지붕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때 흥청거리던 나루터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유난히 많은 여인숙 간판이 눈에 띄었다.

 

여인숙은 값싼 숙박업소인데 주로 선창가나 역 부근에 모여 있었으며 한때 홍등가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학생 때 친했던 친구네가 역 근처에서 여인숙을 했다. 나는 집이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어 시험기간에는 친구 집에서 같이 공부를 하며 밤을 지새웠다. 친구의 방은 여인숙 손님방 뒤편에 자리 잡고 있어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한밤중이 지나면 화장을 짙게 한 ‘언니들’이 우리 방에 찾아와 간식거리를 넣어주고 가는가 하면 건장한 ‘오빠들’도 들러서 공부 잘하라고 격려를 하고 갔다. 친구의 어머니는 늙으셨는데 막내딸인 친구 주변에 언니 오빠 삼촌들이 많아서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영산포 선창가 골목에는 여전히 작고 허름한 여인숙 간판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문을 닫은 집도 있고 백반집으로 전환한 곳도 있었다. 일본식 낡은 가옥에서 사는 89세 어르신은 포구에 쌀과 생선배가 드나들어 흥청거리던 때의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들려주었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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