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해 전에 ‘삼천 원의 식사’ 전시를 했는데, 서민들이 값싼 가격으로 쉽게 사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나 생필품을 가게 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전이었다. 한 젊은 사진가가 말하기를 ‘자기는 여태까지 식당에 들어가서 주인이 내놓는 음식만 보았지 사람의 얼굴을 잘 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고백에는 자기가 필요한 것은 음식이었지 사람이 아니었고 타인과의 멋쩍은 응시는 그만큼 불편했다는 의미가 동시에 들어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식당 분위기나 주인과 종업원의 인상도 살피고 주방 속까지 훑어보면서 뭔가 더한 친숙함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옛날 사람들의 습관이 떠오르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요즈음이다 보니 얼굴을 자세히 볼 수도 없거니와 사람의 눈을 바로 쳐다볼 일이 없어졌다.
그러나 관계는 서로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매일 매 순간 서로 바라보는 일로 엄마와 아이는 사랑을 나눈다. 시선을 피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타인에게 읽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바라보아야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무슨 새일까? 검은등뻐꾸기 같기도 하다. 아무튼 크기가 작은 새는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새는 인기척을 느끼면 달아나버리기 일쑤여서 휴대폰으로 찍기가 어렵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에도 날아가지 않았다. 어느새 서로 바라보는 위치까지 접근해 있었다. 새는 나를 유심히 바라다보았다. 우리는 눈을 마주 보면서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있었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