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원의 예술
예술은 왠지 도시적이어야 하고, 지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 예술은 깊이 파고들거나 눈이 번쩍이게 창조적이어야 할 것 같아 가까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비 오는 산책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날도 발걸음이 할아버지의 길목 좌판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도 오고 이 철에 나오는 채소도 마땅히 없을 것 같아 스쳐가려 하는데 좌판 위에 부추 한 움큼이 빨간 소반에 담겨 있다. 테두리에 흑백 패턴무늬가 있는 검정 우산이 부추가 비에 젖지 않도록 소중히 감싸고 있었다.
땅바닥에는 ‘부추 2000’이라고 쓴 골판지가 비에 젖어 있다. 좌판 왼쪽에는 검정 플라스틱 모종판이 있고, ‘노각 오이 묘 1포기 500원’이라고 쓰여 있다. 할아버지는 산자락에 붙어 있는 땅에 매년 농사를 지어서 등산객에게 팔고 있다. ‘남의 땅인데 놀기 뭐해서 잠시 빌려서 심었다’고 하는데 적지 않는 땅을 기계도 없이 삽으로 흙을 파고 채소를 가꾸었다. 그런데 올봄에는 땅을 일구지 않았다. 힘에 부치시는 모양이었다. 밭에는 풀이 무성한데 그 안에서 작년에 심어둔 부추가 싹이 나니 그것을 다듬어서 팔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불미나리도 팔고 고수도 판다.
나는 돈을 미쳐 못 가지고 간 날은 외상으로 가져온다. 이래저래 대화를 하다 보니 서로 낯을 익혔다. 부추를 사면서 “채소가 이슬비에 젖으면 더 싱싱할 텐데 왜 우산을 씌워요”하고 물었더니 “저것들이 비를 맞으면 향이 달아나요”라고 하신다. 예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