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CE. 2021. 김지연
며칠 전 인감증명을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다. 담당 공무원은 지문 검사기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라고 했다. 위아래 좌우로 돌려 봐도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단다. 그렇게 열 손가락을 들고 씨름을 하고 나서야 물휴지로 지문을 닦아 보라고 하더니 간신히 엄지 지문이 통과되었다. 하마터면 나를 ‘증명’할 방법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우연히 나무의 표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무의 종류마다 크게 차이가 있었으며 같은 종류라도 조금씩 서로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의 피부도 그러지 않겠는가. 인종과 나이와 성별과 신분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피부는 물체의 표면을 감싸고 있는데 그 표면이란 사회와 풍파에 맞서 싸워야 하는 부분이다. 인간 세상사도 바깥의 낮은 계층부터 먼저 충돌하고 소멸한다. 나의 지문도 바깥세상과 싸우다가 나를 먼저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민등록증을 갱신한 지가 20년 가까이 지났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의 주름진 얼굴이 이러할 때 지문인들 온전하겠는가?
사물을 규정하기에 가장 적합한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나를 나라고 알리는 방법은 단순한 듯 보이면서도 복잡하다. 사람들은 대개 얼굴이나 목소리로 알아보겠지만 ‘알아본다는 것’은 참으로 애매해서 못 알아본다거나 잘못 아는 것일 수도 있다. 늘 통용되던 것들이 어떤 특정한 시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증명’이란 것이 필요한데, 나를 ‘증명’하는 것조차 애를 태워야 하다니!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