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복숭아

복숭아. 2021. 김지연

뜨거운 열기와 코로나19로 범벅이 된 지친 시간의 물결 속에서 나무의 초록빛은 더 짙어지고 과일은 제 몸속에 당분을 저장해가고 있다. 숲이 짙어진다는 것은 곧 가을이 오고 단풍이 든다는 신호이다. 왜 무더위 한가운데에 입추가 들어 있을까? 절정이었을 때 다음에 올 위기나 평화를 준비한다는 뜻일 것 같다. 더위와 코로나가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고 잘 지나가길 바란다.

 

자주 가는 산의 길목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다. 작년 여름 긴 장마로 복숭아가 익은 채로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과수원을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가슴이 쿵쿵 내려앉았다. 그러나 다시 무심한 시간은 흘러 올해 복숭아 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곳은 늦은 복숭아라서 이제 시작해 추석 전에 작업을 끝낸다. 과수원 주인 아주머니가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를 따서 밭에서 들고나왔다. 갓 딴 복숭아의 신선함과 보드라움과 달달함이 비료 봉지로 만든 투명한 바구니에서 고개를 내민다.

 

수박이나 참외 같은 다른 과일은 겉으로만 봐서는 맛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복숭아는 투명한 과일이어서 얼마나 신선한지 달콤한지 딱딱한지 부드러운지를 겉으로만 봐서도 알 수 있다. 살아 있는 심장 같기도 하고 갓난아기 엉덩이와도 같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럴 때 나는 삶의 질감 같은 것을 느낀다. 과수원 주인의 힘찬 발걸음이 올해의 좋은 수확 소식을 전해주는 듯하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은 생명이 짧다. 복숭아도 제철이 지나가기 전에 사서 먹어야겠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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