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썸네일형 리스트형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재난 서사 단막극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상파 유일의 단막극 시리즈 ‘KBS 드라마 스페셜’이 지난달 16일, 을 시작으로 축제의 문을 열었다. 지난해 영화 프로젝트인 ‘TV시네마’ 부문을 신설해 그 방영작들이 국제상을 받는 등 인상적인 성과를 거둔 ‘KBS 드라마 스페셜’은 올해도 주중 프라임타임대 방영이라는 파격 편성으로 한층 공을 들인 모양새다. 신선함과 다양함으로 무장한 단막극은 방송 생태계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그 해의 시대정신과 핵심 키워드를 엿볼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KBS 드라마 스페셜’이 최근 3년간 다룬 소재만 보더라도 학교폭력, 노인 빈곤, 아동학대, 소년범죄, 고독사, 성차별 등 근래 한국을 뒤흔든 여러 사회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KBS 드라마 스페.. 더보기 사법불신의 시대, 약자들 위로하는 법조물 현재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장르는 단연 법조물이다. 지난달에는 월화극 (KBS)부터 토일드라마 까지, 일주일 내내 법조인 드라마가 프라임타임을 장악하기도 했다. 물론 유행이라고 하기에는, 안방극장의 대세 장르 자리를 법조물이 차지한 지 오래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법조물의 새로운 경향이다. 법조물이 국내에서 처음 장르군을 형성할 무렵 그 인기를 견인한 것은 검사 캐릭터였다. 공익을 대표하는 1인 국가기관으로서 거대악을 응징하는 검사 드라마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의 성격을 띠며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곤 했다. 이 같은 열혈 검사 히어로물의 계보는 올해 초 방영된 (SBS)나 현재 방영 중인 (KBS) 같은 작품들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근래 법조물의 주도권은 변호사에게로 완전히 넘어온 듯.. 더보기 편의점 공화국의 그늘을 비추다 쇼트폼 드라마 의 한 장면. 올 상반기에 방영된 드라마 (JTBC) 첫 화에서는 편의점 본사 매장관리직원 염창희(이민기)와 지점 영업 종료를 앞둔 한 점주가 도시락을 나눠 먹으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본사에서 물건 빼낼 때까지 (가게) 문은 잠가두세요.” “어떻게 잠그는지 몰라. 내가 24시간 영업을 10년 했다. 문을 잠가봤겠냐?” 10년 전 편의점 창업에 뛰어든 중년의 남자가 문을 잠그는 법을 잊어버릴 정도로 쉼 없이 일하면서 은퇴할 나이가 되는 동안, 대한민국은 소위 ‘편의점 공화국’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편의점 점포 수는 5만 개를 돌파했다. 인구 1000명당 1개꼴로, 한국은 인구 대비 편의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수적 증가만 눈에 띄는 것은 아.. 더보기 오발탄이 그려낸 우리 사회의 자화상 평화롭던 시골 마을에 멧돼지가 내려온다. 파랗게 익어가던 채소밭을 쑥대밭으로 만든 불청객이 사라지자, 마을 남자들이 총을 챙겨 사냥에 나선다. 얼마 전 로또 당첨으로 돈벼락을 맞아 기세가 등등해진 영수(박호산)가 선봉에 섰다. 남자들이 몰아준 방향으로 멧돼지를 쫓아가던 영수는 눈앞의 수풀이 흔들리자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나 총알이 날아간 방향에서 들려온 것은, 짐승의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신음이었다. 지난달 MBC가 방영한 4부작 드라마 은 한 남자의 오발 사고가 불러온 시골 마을의 비극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지난해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PD상을 수상한 작품은 짧은 분량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 추석 특집 TV 무비로도 편성됐다. K드라마의 화려한 열풍 .. 더보기 탈혼의 시대에 ‘블랙의 신부’를 본다는 것 는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최초의 치정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상류층 결혼정보회사에서 펼쳐지는 치정 스캔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속물적 욕망을 들여다보는 현실풍자극을 표방하지만, 본질은 이른바 ‘K막장드라마’에 가깝다. 남편의 극단적 선택으로 위기에 처한 여성이 가족 비극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의 파멸을 꿈꾸는 이야기 안에는 불륜, 재벌, 복수, 출생의 비밀 등 막장드라마의 필수 요소가 가득하다. 그동안 넷플릭스가 선보여온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는 대부분 장르물이었다. 조선 시대 좀비 아포칼립스 , 크리처물 , 데스 게임물 , 코즈믹 호러 등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선하고 다양한 소재의 장르물은 넷플릭스가 가장 영향력 있는 플랫폼으로 등극한 핵심 비결 중 하나다. 진부한 이야기에 .. 더보기 ‘우영우’의 신묘한 화법 우영우(박은빈)는 변호사다.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그는 국내 최대 로펌 중 하나인 한바다에 채용된다. 촉망받는 인재의 승승장구할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영우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그는 ‘본인으로만 이뤄진 세계에 사는 데 익숙해’ 종종 소통에 서툰 모습을 보인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큰 난관이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우영우는 승소율만 높은 변호사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길을 꿋꿋이 걷는다. ENA 드라마 는 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휴먼 법정드라마이다. 기존 법정물의 단골 클리셰였던 부패한 거대 권력과의 싸움, 잔혹한 강력 범죄, 처절한 복수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특별한 설정을 부여한 원톱 .. 더보기 ‘단막극의 새로운 진화’는 계속된다 KBS 드라마 (사진)이 지난달 국제 영상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는 텔리상 시상식에서 ‘TV 호러물’ 부문 금상을 차지했다. 은 단막극 프로젝트인 ‘KBS 드라마 스페셜’에서 지난해 11월 처음 방영된 작품으로, 가상의 소음공해 처리기술을 소재로 한 SF 스릴러다. 거대 중공업 회사에서 개발한 소음공해 처리시설 설치를 두고 마을 주민들과 보상금 협상을 진행하던 오과장(조달환)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후임 직원 태승(최진혁)이 그 죽음에 뒤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내용을 다뤘다. 방영 당시에도 참신한 스토리와 진지한 사회적 메시지로 호평을 받은 작품은 지난 3월에는 스톡홀름 필름&TV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한 바 있다. 이번에 받은 텔리상 금상은 두 번째 국제상 수상이다. 이 거둔 성취는 단지 한 작품의 .. 더보기 필부(匹婦)들의 대하드라마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족보는 성서에 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마태복음 1장 2절)로 시작되는 예수의 족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인류의 시조’ 아담이 존재한다. 아담에서부터 그 아들의 아들들로 이어져 내려오는 족보는 ‘하나님 아버지’가 인류를 구원할 ‘독생자’를 위해 계획한 ‘거룩한 계보’다. 동시에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남성중심적 기록인가를 말해주는 대표적 증거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에 걸친, 한국 이민자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드라마 (애플TV+)에도 이 신성한 계보에서 이름을 딴 인물들이 등장한다.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의 목사 이삭(노상현)과 아들들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목회 활동을 펼치다 재.. 더보기 혁신 판타지 드라마에 담긴 시대적 요구 월화극 시청률 1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tvN)은 군 법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 , 드라마 등의 각본을 집필하며 ‘법정물의 장인’으로 불린 윤현호 작가가 기획의도에서도 언급했듯, 법정물이 큰 인기를 끄는 국내 드라마계에서 지금껏 “군사법원이 메인 무대였던”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국가안보라는 ‘대의’ 안에서 성역화된 군대의 특수성 때문이다. 잇단 군 성범죄 및 사망 사건 이후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는 등 군대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군 법정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드라마가 드디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군대에 오게 된 젊은 검사들이 군대의 거악과 맞서는 과정을 그리는 은 ‘한국 최초의 밀리터리 법정물’이라는 새 기록을 썼다. 최근 몇 년 사이, .. 더보기 BL 대중화의 과제 던지다 2022년 2분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올해 첫 분기 최고 화제작을 꼽는다면 단연 왓챠의 오리지널 드라마 (사진)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글로벌 시청 순위 상위권을 차지한 (넷플릭스), (넷플릭스), (tvN), (SBS) 등도 눈길을 끈 작품이지만, 는 화제성에 더해 국내 드라마 장르사에 신기원을 연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캠퍼스를 배경으로 상극관계인 두 청춘의 로맨스를 그린 는 BL(Boy’s Love) 장르에 속한다. 남성 간의 사랑을 다루는 BL은 소위 ‘음지문화’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마이너 장르였다. 사회적 금기를 소재로 한다는 것도 한 요인이지만,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투영하는 ‘여성향’ 장르에 대한 폄하와 자조도 작용했다. 오랫동안 그늘에 머물러 있던 BL은 유통 플랫폼.. 더보기 학원괴담 2022 최근 학원물의 새 경향은 호러 장르적 요소와의 적극적 결합이다. 이 같은 경향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넷플릭스 (2020)은 범죄스릴러, 그 뒤를 이어 역시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은 오컬트 호러의 성격을 띤 작품이었다. 같은 해 TV조선에서 동시 방영된 seezn(시즌)의 오리지널 3부작 드라마 은 아예 정통 호러물이다. 지난해 전통적인 학원물의 계보를 잇는 (KBS)이 방영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새로운 경향에 대적할 만한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급기야 올해 초에는 좀비 아포칼립스 학원물까지 등장하고야 만다. 지난 1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사진)은 학원물의 새로운 경향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이다. 드라마는 경기도 외곽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 더보기 악의 시대를 읽다 1999년, 영웅파라 불리는 범죄조직이 동료조직원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다. 살해 뒤 시신을 훼손한 방식이 너무도 처참했던 이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다. SBS 드라마 은 주인공인 송하영(김남길) 형사가 임무를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자체는 가공된 이야기이나, 그 토대는 현실임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대한민국 첫 프로파일러 팀의 탄생기를 담은 동명의 논픽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주목할 것은 극의 시기적 배경이다. 이야기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1990년대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범죄의 양상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범죄 대부분은 동기가 뚜렷했지만, 이 시기부터는 범죄의 반사회성, 반인간성이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더보기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