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그’ 건축가의 자기 연출

지중해를 마주한 언덕에 자리한 코르뷔지에 묘지. 르 코르뷔지에 재단

르 코르뷔지에가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만든 작품들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더불어 교묘한 자기 연출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가 남긴 ‘주택은 삶을 위한 기계’ ‘근대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빛나는 도시’ 등 세간의 주목을 받은 강력한 강령들은 자신을 단순한 예술가를 넘어 미래지향적 이상가로서 자리매김하였다.

 

또 한 예로 그가 주축이 되어 출간한 예술 잡지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는 당시 최첨단 기업들의 광고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 광고들은 해당 기업으로부터 아무런 게재 의뢰를 받지 않았으나 르 코르뷔지에가 멋대로 내보내고 사후에 홍보비를 청구하는 다소 황당한 방법을 취하였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잡지에 적합한 위상을 가진 기업을 스스로 고른 것이다. 이를 통해 잡지가 지향하는 분위기나 방향성을 더욱 명확히 하면서도 갓 발간된 신규 잡지의 인지성도 더불어 높인 일거양득의 홍보 방식이었다. 실제로 광고가 실린 기업으로서 광고료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나간 광고까지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법. 자초지종을 알 리 없는 독자의 눈에는 신간 잡지의 강한 인상이 새겨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권말에 이 잡지가 얼마나 세계적으로 구독되는가를 나타내는 세계지도가 포함된 것도 사뭇 흥미롭다. 어떤 나라에서 한 명이라도 구독자가 발생하면 그 국가 영역 전체에 색칠이 된 것이라 무척 허술하긴 하지만 구독자로서는 분명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로 인식되는 효과가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사소할 수 있는 일을 부풀려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자신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 자수성가한 건축가로서 주변 건축학계로부터 배척당하고 있음을 떨어진 설계공모를 역으로 홍보하여 지명도를 높인 것도 흥미롭다. 본명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라는 산골 청년이 불굴의 건축가이자 세계의 르 코르뷔지에로 불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는 ‘르 코르뷔지에’라는 페르소나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이름 앞의 ‘르(Le)’는 영어의 고유명사 ‘THE’에 해당한다. 생전에 남긴 작품집 속에서 그는 자신을 항상 3인칭인 ‘그’로 부르며 타자화하였다. 어느 화창한 오후 푸른 지중해 바닷속에 홀연히 안기며 르 코르뷔지에다운 방식으로 삶을 뒤로하고 잔느레는 불멸의 전설이 되었다.

 

조진만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