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세계의 끝’과 장티푸스 메리

드라마 <세계의 끝>은 정체불명의 괴질을 추적하는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팀의 시점을 따라가는 동시에 ‘장티푸스 메리’에 대항하는 20대 청년 어기영(김용민)의 시점을 통해 감염자 혐오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JTBC 제공


21세기 최초의 팬데믹을 일으킨 바이러스 질환은 신종플루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피해자를 남겼다. 2009년 4월 첫 환자가 나타난 뒤 1년 동안 확진환자 수는 75만여명, 사망자 수는 260여명에 이를 정도다. 신종플루가 한풀 꺾인 뒤에는 구제역이 찾아왔다. 2010~2011년 구제역 사태 때 살처분된 가축 수는 400만마리를 넘어선다. 당시 동물보호협회가 공개한 돼지 생매장 영상의 충격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국내에서 감염 재난물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2012년 국내 최초의 감염재난 영화 <연가시>가 4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영화 <감기>, 드라마 <세계의 끝>(JTBC)과 <더 바이러스>(OCN), 소설 <28> 등 다양한 분야의 감염 재난물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의 감염 재난물에는 국가의 통제와 격리의 모티브가 강하게 드러난다. 즉 감염병 그 자체에 대한 공포보다 감염자들을 향한 국가권력의 감시와 폭력의 공포가 더 크게 묘사되곤 했다. 감염의 성격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겠지만, 동시에 언론의 자유가 축소되고 검열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시대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5년 뒤 발발한 메르스사태는 또 다른 양상의 폐해를 낳았다. 바로 감염자에 대한 ‘혐오’의 확산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이, 메르스 증상을 보인 여성들에 대한 가짜뉴스와 혐오를 반박하면서 시작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당시 감염자들을 지칭하는 표현에도 혐오가 잘 나타난다. 신종플루 때까지만 해도 많이 쓰이던 ‘추정환자’라는 표현을 ‘의심환자’라는 용어가 대체했고, 감염자들에게는 1번, 2번, 3번, 4번 등의 숫자가 따라붙었다. 이들에 대한 소위 ‘신상털기’와 낙인찍기 문제도 심각했다. 메르스사태 이후 개봉한 좀비 재난영화 <부산행>에는 감염자 혐오의 그늘이 잘 그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 감염자들은 그 자체로 괴물이 되었고, 비감염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불신하고 배제한다. 


이 같은 감염자 혐오 현상은 현재 유행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서 한층 확산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 넘쳐나고, 확진자 이동 경로 공개는 ‘공공의 안전’이라는 목적보다는 그들의 행적 하나하나에 대한 비난의 근거로 활용된다. 


앞서 언급한 감염 재난물 가운데 <세계의 끝>은 이러한 현상을 예견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는 감염자 혐오의 상징과도 같은 ‘장티푸스 메리’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무증상 보균자를 뜻하는 이 용어는 1902년부터 1915년까지 수십명에게 장티푸스를 옮긴 뉴욕의 요리사 메리의 사례에서 비롯됐다. 증상이 없었기에 자신이 보균자인 줄 몰랐던 메리는 이 사실이 밝혀진 뒤 병원 수용소에 강제 격리돼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당시 메리를 보도한 기사나 삽화 등에는 그가 거의 마녀처럼 표현되어 있다. 

   

<세계의 끝>은 정체불명의 괴질을 추적하는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팀의 시점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이 ‘장티푸스 메리’에 대항하는 20대 청년 어기영(김용민)의 시점 역시 많은 비중을 할애해 보여준다. 등록금을 마련하려 원양어선 문양호를 탔다가 북극의 얼음 속에 보존돼 있던 바이러스에 노출된 어기영은 다른 선원들의 공격 타깃이 되어 살해 위협에 처한다. 겨우 살아남아 귀항한 뒤에도 생지옥 같았던 문양호에서의 트라우마 때문에 누구도 믿지 못한다. 드라마는 어기영이 장티푸스 메리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그를 살인마처럼 몰아가는 언론과 그에게 “죽으려면 혼자 죽으라”는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감염자에 대한 혐오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감염자 악마화의 문제점은 항체 전문가 윤규진(장현성)의 대사에도 드러난다. 괴질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뉴스에 출연한 그는 이 사태를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생태계 파괴가 가져온 비극”이라고 관습적으로 표현하는 진행자에게 ‘바이러스 유행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답한다. 같은 맥락에서 단순히 감염자를 배제하고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팬데믹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감염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분위기 속에 그들 역시 ‘운 없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또 하나의 사실은 너무나 많이 간과되고 있다.  


<세계의 끝>에서 감염자 혐오가 그저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괴바이러스의 특징에 의해 그대로 반박된다. 다른 건강한 숙주로 옮겨가려는 괴바이러스의 탈출 욕구야말로 순수한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감염자들은 이러한 바이러스의 특징에 의해 전무후무한 전파력을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끝내 확인하게 되는 진정한 ‘세계의 끝’은 인간의 연대가 완전히 파괴된 곳이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