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특식 : [명사] 특별히 잘 차려진 식사.’ 밥벌이하는 이들에게 특식이란 금요일 저녁 밥상에 올려지는 음식 아닐까. 일주일을 잘 버텨낸 나에게 보상이 될 만한 게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해 고른 그 음식 말이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지만, 내게 특식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해산물’을 꼽겠다. 그때그때 가장 끌리는 해산물을 배달 앱으로 주문하거나, 배송일을 금요일에 맞추고 산지 업체에서 주문한다. 해삼, 멍게, 개불, 전복 등이 한꺼번에 담긴 ‘모둠 해산물’을 먹을 때도 있고, 주머니 사정이 가벼울 땐 단품을 시켜 먹는다. 술도 빼놓을 수 없는데, 맥주나 청하를 곁들인다.
올봄부터 미더덕 회를 주문해 먹기 시작했다. 초여름까지 신나게 먹었다. 산지에서 채취 당일 보내주니 매번 ‘세상 참 좋아졌구나’ 싶었다. 4월이 제철이라 이제 씨알은 좀 작지만, 양식 기술이 좋아져 지금도 횟감용 미더덕은 1킬로 9900원 안짝의 가격에 판매된다.
손질도 간단하다. 이미 산지에서 1차로 손질된 미더덕은 오돌토돌한 껍질이 3분의 1정도만 남아 있다. 어두운 색의 티셔츠로 갈아입고 작업을 시작한다. 크기가 작은 녀석들은 된장찌개에 넣을 용도로 따로 분류를 하고, 엄지손가락 크기만한 녀석들만 따로 모은다. 연한 막 부분을 반으로 가르면 멍게와 같은 주황색 살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진녹색 혹은 황색의 내장만 칼등으로 긁어내면 된다. 막이 ‘톡’하고 터지는 과정에서 미더덕 즙으로 옷에 주황 얼룩이 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미더덕 회는 주로 참기름에 찍어 먹는다. 취향에 따라 그냥 먹어도 좋고 초고추장을 찍어 먹어도 좋다. 손질 미더덕은 바닷물이 빠져 엄지손가락 크기에서 엄지손톱 크기로 줄어드는데, 맛과 향은 멍게의 수배에 이른다. 맛도 맛이지만, 껍질 부분을 씹을 때 ‘오도독’ 하는 식감이 일품이다. 미더덕은 한국에서만 먹는 식자재라고 하니 특식도 이만한 특식이 없다.
회를 먹다 물리면 된장을 연하게 푼 찌개에 미더덕을 한주먹 넣고 끓인다. 미더덕의 개운한 맛이 우러난 국물 한 숟갈이면,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야’를 외칠 수 있다. 술 동무가 얄미운 소리를 할 때면 뜨거운 미더덕을 숟가락에 올려주자. 입천장이 벗겨지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껍질을 씹어 삼키느냐 뱉느냐 역시 취향의 문제다. 삼켜도 별 문제가 없다는 건 몸소 시험했다. 아귀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오만둥이(주름 미더덕)도 회로 먹을 수 있다. 오만둥이 회는 껍질을 따로 벗기지 않고 통째로 먹는 게 특징인데, 식감은 좋으나 향이 약하고 살이 적어 추천하진 않는다.
해산물 맛을 설명하다 보면 ‘비린내’라는 단어를 쓸 때가 많다. ‘비린내’의 사전적 뜻은 ‘날콩이나 물고기, 동물의 피 따위에서 나는 역겹고 매스꺼운 냄새’라고 한다. 산지 직송 미더덕의 개운한 맛과 오독한 식감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비유다. 비린 것은 내집에서 미더덕회를 먹을 수 있게 해준 물류 시스템 이면의 착취구조였다. ‘당일 출고’, ‘당일 배송’ 문구가 반갑지 않은 요즘, 입맛을 바꿔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화곡동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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