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요리에 과학 한 스푼] 공기도 맛있는 요리재료 영화 (2005)에 등장하는 초콜릿 공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지?’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러한 풍경의 공장이 아닙니다. 일단 이 공장의 근로자들부터 남다른데요. 사장인 윌리윙카가 오지를 여행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움파루파’라는 키 작은 종족들이 고용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장 안에 위치한 거대한 산을 오르며 초콜릿에 쓸 재료들을 구하고, 그리고 만들어진 초콜릿을 테스트하기 위해 대포에 넣고 하늘로 쏘기도 합니다. 또 공장을 관통하는 거대한 초콜릿 강을 배로 이동하기도 하죠. 그런데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강의 끝자락에 있는 거대한 초콜릿 폭포입니다. 윌리윙카는 이.. 더보기
[요리에 과학 한 스푼] 초밥이 시큼한 이유 술과 빵을 만드는 알코올 발효와 구분하여 젖산 발효라는 것이 있습니다.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알코올이 아니라 젖산이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요구르트가 있는데, 이 발효에는 동물의 몸속에도 존재하는 락토바실루스란 젖산균이 관여합니다. 오래전 유목민들이 가죽 주머니에 보관하던 우유가 발효되는 현상을 처음 발견했다고 하는데, 동물의 천연 가죽에 이 락토바실루스가 미량이나마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에는 이미 만들어진 요구르트를 우유에 소량 첨가하는 더 손쉬운 방법을 찾아내게 됩니다. 젖산 발효가 진행되어 젖산이 어느 정도 생성되기 시작하면 산에 의해 단백질이 서로 엉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유가 서서히 응고되기 시작하면서 요구르트가 만들어집니다. 젖산은 상큼한 .. 더보기
[고영의 문헌 속 ‘밥상’] 보면 볼수록 만만찮은 호떡 연대기 “꿀 든 호떡을 먹을 적에는 반드시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서 먹어야 한다. 한 입 베어 물면 꿀이 꿰져 나와 뚝뚝 떨어진다. 그 꿀이 입에서는 뜨거운 줄 모르는데, 손등에라도 떨어지면 몹시 뜨겁고, 핥아먹고 나면 살갗이 알알하다./ 이 꿀 든 호떡을 먹노라면, 입가에 검은 꿀이 묻어서 물에 씻어야 지워졌다.” 일평생 아동문학에 매달려 살다 간 어효선(1925~2004년)이 남긴 호떡 이야기 한 도막이다. 혓바닥 데는 줄 모르고, 입천장 까지는 줄 모르고 먹는 호떡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통칭 ‘중국 사람들’, 곧 화교가 꽉 잡고 있었다. 화교가 이 땅에 들여온 음식이니 그럴 수밖에. 굽는 풍경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어효선의 회고에 따르면 호떡은 화교의 중국집에서 팔던 음식이었다. 호떡집에는 벽돌로 .. 더보기
[요리에 과학 한 스푼] 맛을 잘 느끼는 사람들 와인을 소재로 한 이란 만화에 한동안 빠져 살았습니다. 와인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도 좋았지만, 최고의 와인 감별사가 되기 위한 주인공들 간의 경쟁 또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이 만화의 주인공 시즈쿠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와인평론가 아버지를 둔 와인계의 금수저였습니다. 게다가 실력도 출중해 정확한 와인 감별은 물론 그 와인에 대한 생생한 묘사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한마디로 초미각자였는데요, 타고난 유전자에다 아버지의 혹독한 미각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능력이 다릅니다. 어떤 이는 운동을 잘하지만 그림은 못 그리고, 반대로 어떤 이는 그림은 잘 그리지만 운동에 서툰 경우도 있죠. 미각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개인적인 편차는 존재합니다. 여러분의 미각은.. 더보기
[고영의 문헌 속 ‘밥상’] 운수 좋은 날 “선술집은 훈훈하고 땃땃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 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 김 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현진건(1900~1943) 소설 (1924)의 한 장면이다. 인력거꾼 김 첨지는 오늘따라 운수가 좋았다. 승객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덕분에 앓아누운 아내가 사흘을 조른 ‘설렁탕 국물’ 한 그릇을 마련하고도 남을 만큼 주머니가 찼다. 허기가 질 대로 진 김 첨지는 선술집에 들러 되는 대로 요깃거리를 골라잡았다.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김 첨지는 허겁지겁 빈대떡을 먹어치운 .. 더보기
[요리에 과학 한 스푼] 노란색 면의 비밀 오늘은 남아 있던 짜장 소스로 짜장면을 한번 만들어보려 합니다. 그런데 중화면이 조금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제 것은 소면으로 대체합니다. 다행히도 아내와 아이는 만족해하지만, 저는 뭔가 아쉬운 듯한 기분을 감출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짜장면은 소면이 아니라 중화면이기 때문입니다. 면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보통은 그 제조방식에 따라 구분하는데, 먼저 손으로 반죽을 여러 번 치대고 당기면서 만드는 납면이 있습니다. 중화면과 라멘은 보통 이 방식으로 만들어지죠. 압면은 작은 구멍으로 반죽을 밀어 넣어 뽑아낸 면입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냉면이 있습니다. 그밖에 칼국수처럼 반죽을 얇게 편 후 칼로 썰어 만드는 절면도 있습니다. 마지막은 제가 사용했던 소면인데, 반죽을 길게 늘여 막대기 사이에 감아 놓고.. 더보기
[고영의 문헌 속 ‘밥상’] 하릴없는 한마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 음식에 부친 프랑스 문인 브리야사바랭(1755~1826)이 남긴 한마디이다. 먹방 영상이 자주 써먹는 말이기도 하다. 이 한마디의 설득력은 예부터 대단했다.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1804~1872)는 이 문장을 철학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독일어 문장 “Der Mensch ist, was er ißt”로 번안했다. 이는 다시 영어권으로 번져 영어 격언 “You are what you eat”를 낳았다. 곧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라는 뜻이다. 읽는 눈에도, 소리 내 읽는 입속에서도, 듣는 귓가에도 쟁쟁한 한마디이다. 하지만 그 .. 더보기
[요리에 과학 한 스푼]맛있는 갈색, 맛없는 갈색 사과를 깎아 놓으면 금세 갈색으로 변합니다. 갈변이라 부르는 현상인데요, 그렇다고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사과와 같은 과일에는 클로로제닉산과 같은 폴리페놀 화합물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당근을 붉게 만드는 안토시아닌, 녹차에 풍부한 카테킨 등도 이 폴리페놀 화합물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사과에는 이 폴리페놀 화합물을 산화시키는 효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껍질을 깎은 사과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산화가 잘 일어납니다. 이렇게 산화되어 만들어진 물질을 퀴논이라 하는데, 이 퀴논은 반응성이 매우 좋아 서로 반응을 일으켜 멜라닌이란 물질을 생성합니다. 이 멜라닌은 갈색의 색소 성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갈변을 방지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더보기
[요리에 과학 한 스푼]맛이 전부는 아니다 오랜만에 찾은 국숫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여름엔 콩국수가 일품이었는데, 이제는 다시 그 맛을 볼 수 없게 되었네요. 단골 가게가 문 닫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오늘 따라 뭔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듯 상실감이 큽니다. 요리를 즐길 때 보통 맛을 즐긴다고 합니다. 더 정확히는 미각으로 표현되는 맛, 후각으로 표현되는 향을 즐기는 것이죠. 이 두 가지 감각을 합쳐 풍미라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리의 경험에 이들 감각만 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시각도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요리를 평가하는 데 시각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보기가 좋지 않으면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정보의 관점에서도 시각은 중요합니다. 잠깐 보기만 해도 그것이 먹을.. 더보기
[요리에 과학 한 스푼]더 오래 더 안전하게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간식거리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미리 재료를 준비해 놓은 것은 아니니, 가지고 있는 것들로만 요리를 해야 합니다.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파스타 면. 서랍을 여니 이번엔 진공 포장된 마늘이 보입니다. 다른 밀키트에 있던 것을 따로 보관해 둔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메뉴가 정해졌습니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마늘과 올리브 오일, 그리고 건고추 가루만 있으면 가능한 메뉴입니다. 먼저 파스타 면을 삶아내고, 면수는 나중에 볶을 때 다시 써야 하니 따로 보관해 둡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마늘을 볶을 차례입니다. 그런데 큰일입니다. 멀쩡해 보이던 마늘이 포장을 뜯자 냄새를 확 피웁니다. 물로 씻어보아도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습니다. 진공 포장이라 꽤 오래 .. 더보기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법전을 덮고 사전을 펼 때 장풍은 손바닥으로 바람을 일으켜 근거리의 상대를 타격하는 초능력이다. 장풍은 무협지에 등장하는 대표적 허풍이다. 반면 실제로 신체적 접촉 없이 상대에 위해를 가할 수도, 이해를 구할 수도 있는 초능력이 있다. 인간의 말이다. 세 치 혀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 않는가. 언어를 매개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초능력이 발휘되려면 합의된 말의 뜻을 공유해야 한다. 존재하는 단어를 다 알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잘못 알고 오용하는 단어도 적지 않다. 명확하게 말을 다루는 일은 만만치 않다. 사전이 필요한 이유다. 사전 편찬은 시간과 품은 많이 들지만 이득은 적어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 ‘비범한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해서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사전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도 광기 어.. 더보기
[요리에 과학 한 스푼]순간의 선택이 중요한 기름 얼마 전 한 발명가를 만났습니다. 기름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튀김기라 자신 있게 소개하는 제품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핵심은 기름 정제에 있었습니다. 사용하는 기름을 수시로 정제해 불순물을 최대한 제거해주면서 기름의 산패를 지연시키는 원리였습니다. 산패란 기름이 산화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을 말합니다. 혹시 항산화식품이란 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산화를 방지하는 식품이란 뜻인데요,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많죠. 산화가 그만큼 건강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산화란 쉽게 말해 산소와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몸에 해로운 물질들이 만들어집니다. 기름의 산화는 튀김에서 특히 잘 일어납니다. 매우 높은 고온에서 가열하다 보니 산화반응이 촉진되고, 식재료에서 흘러나오는 수분도 이 반응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