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요리에 과학 한 스푼] 맛을 잘 느끼는 사람들

와인을 소재로 한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에 한동안 빠져 살았습니다. 와인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도 좋았지만, 최고의 와인 감별사가 되기 위한 주인공들 간의 경쟁 또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이 만화의 주인공 시즈쿠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와인평론가 아버지를 둔 와인계의 금수저였습니다. 게다가 실력도 출중해 정확한 와인 감별은 물론 그 와인에 대한 생생한 묘사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한마디로 초미각자였는데요, 타고난 유전자에다 아버지의 혹독한 미각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능력이 다릅니다. 어떤 이는 운동을 잘하지만 그림은 못 그리고, 반대로 어떤 이는 그림은 잘 그리지만 운동에 서툰 경우도 있죠. 미각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개인적인 편차는 존재합니다. 여러분의 미각은 어떤가요?

혀의 맛봉오리(미뢰)나 미각세포의 수에 있어서 유전적인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또 같은 수의 미각세포라도 그 민감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데, 질병이나 노화와 같은 건강상 이유로 침의 양이 줄어들면 맛에 대한 민감도 또한 저하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각의 능력은 어떻게 측정할까요? 쓴맛에 대한 상대적 민감도를 측정하는 PTC법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됩니다. PTC란 ‘페닐티오카바미드’란 화합물의 약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물질이 혀에 닿으면 쓴맛을 느끼지만, 대략 25% 정도의 사람들은 그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미맹(味盲)인 것입니다.

사실 이 시험법은 우연의 산물이었습니다. 1930년 듀폰에서 새로운 염료를 개발하던 아서 폭스가 가루 상태인 PTC를 실수로 바닥에 쏟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공기 중에 쓴맛이 난다고 불평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 쓴맛을 느낄 수 없었죠. 오늘날의 미맹 테스트에는 PTC보다는 PROP라는 물질이 더 자주 사용됩니다.

초미각자(supertaster)란 용어는 1990년대 린다 바르토슈크 예일대 교수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그는 사카린을 먹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쓴맛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혀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미뢰들이 있고, PROP를 이용한 미맹 테스트에서도 강한 쓴맛을 느낀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들을 초미각자라 불렀습니다.

만화 주인공 시즈쿠의 능력을 부러워한 적도 있습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초미각은 얼마나 행운일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초미각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초미각자는 설탕과 지방에 민감해 케이크와 같은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없습니다. 게다가 쓴맛을 더 고통스럽게 느끼는데, 짠맛이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에 요리에 소금을 많이 쓰는 경향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중미각자(mediumtaster)인 게 다행스럽습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연재 | 요리에 과학 한 스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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