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 하릴없는 한마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 음식에 부친 프랑스 문인 브리야사바랭(1755~1826)이 남긴 한마디이다. 먹방 영상이 자주 써먹는 말이기도 하다. 이 한마디의 설득력은 예부터 대단했다.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1804~1872)는 이 문장을 철학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독일어 문장 “Der Mensch ist, was er ißt”로 번안했다. 이는 다시 영어권으로 번져 영어 격언 “You are what you eat”를 낳았다. 곧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라는 뜻이다. 읽는 눈에도, 소리 내 읽는 입속에서도, 듣는 귓가에도 쟁쟁한 한마디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제대로 살피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먹는 게’ 곧 ‘너 또는 나’라니, 잘 먹으면 잘 산다는 말인가. ‘잘 먹다’는 또 무슨 뜻인가, ‘잘 산다’는 또 무슨 뜻인가 하는 물음까지 따라오면 다시 무슨 답을 준비해야 할까. 문득 떠오르는, 인당수에 몸 던지러 가는 날, 심청이 아버지 심학규에게 올린 이별의 아침상 장면이 이렇다. “심청이 들어와 눈물로 밥을 지어 아버지께 올리고, 상머리에 마주 앉아 아무쪼록 진지 많이 잡수시게 하느라고 자반도 떼어 입에 넣어 드리고 김쌈도 싸서 수저에 놓으며, ‘진지를 많이 잡수셔요.’ 심 봉사는 철도 모르고, ‘야, 오늘은 반찬이 별로 좋구나. 뉘 집 제사 지냈느냐?’ ”

소설 <심청전>과 판소리 <심청가>가 나고 자란 조선 후기 보통 사람들의 밥상이란 자반 한 도막, 김 한 장이 있으면 “별로 좋”은 곧 ‘평소와 달리 특별한’ 밥상이었다. 흰쌀밥도 어려웠다. 거친 잡곡밥에 물 한 사발 두고, 김치도 아니고 짠지 몇 젓가락과 장 한 종지가 쉽지 않았다. 심청은 온 동네를 다니며 허드렛일을 해 간신히 아버지를 봉양하며 살았다. 자반이나 김과 같은 먹을거리는 부잣집의 관혼상제에 쫓아가 품을 팔아야 얻어걸리는 식료였다. ‘심학규가 먹는 게 심학규’라 치고, 저 한 끼에서 무엇이 드러나는가? 여기서는 지나친 ‘해석’을 일단 멈추어야 할 테다. 저 한 끼가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딸 키우는 삶, 교양 있는 집안 출신의 병마와 장애에 따른 몰락, 그래도 자식 하나 잘 자랐는지 등을 말해줄 리 없다. 다른 무엇보다 서민대중의 평소 식생활과 생활의 형편이 발가벗은 듯 다가오지 않는가.

“동물은 삼키고, 인간은 먹고, 영리한 자만이 즐기며 먹는 법을 안다”는 브리야사바랭이 남긴 또 다른 한마디이다. 돈과 ‘관심’이 몰리는 먹방 영상의 제작자가, 앞서 본 한마디와 함께 영상의 장식품으로 써먹을 만한 한마디다. 더구나 ‘즐김’과 ‘영리함’으로 대중을 홀리며 써먹을 만하다. 하나 오늘날 인류학과 사회학의 장에서는 다른 시점의 보고가 기술되고 있다. 이를테면 ‘별다방’에서 하루에 음료 두 잔 사 마시는 데 부담이 없는 학생과, 그게 불가능한 학생 말이다. 이 둘은 교실 밖에서 달리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차 한 잔 값 때문에 인간의 기본적인 사교와 친목의 공간이 달라진다. 학교에서도 층이 진다. 어떤 멋진 말도 수사도 하릴없어지는 순간이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연재 | 고영의 문헌 속 ‘밥상’ - 경향신문

36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연재기사를 구독하여 새로운 기사를 메일로 먼저 받아보세요. 2021.12.24 03:00 “조기는 평소에 먹는다. 그런데 나는 민어가 아무래도 조기만 못한 것으

www.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