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62) 김형경 - 단체 해외여행

김형경 | 소설가

 

 

그것은 나의 첫 외국여행 경험이었고, 그곳은 체코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이었다. 함께 여행하던 일행은 일곱 명이었는데 우리는 독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체코로 오는 동안 안내인의 도움을 받으며 줄곧 한몸처럼 움직였다. 프라하 성을 관람하고 카를 다리를 건너오는 동안에도 함께 걸었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이르렀을 때, 시간이 남았는지 안내인은 처음으로 자유시간 30분을 주었다.

 

도시는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얀 후스 기념상 앞에 서서 한바퀴 둘러보니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 골목이 대여섯 개쯤 되었고, 골목마다 특색있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모든 골목들을 들어갔다 나오기에 30분은 짧은 시간이었다. 레코드와 서점들이 있는 골목에 들어가 집시 뮤직 테이프를 들어보고, 크리스털 제품과 인형들을 주로 파는 골목에서 작은 크리스털 공예품 하나를 샀다. 그리고 후회했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단체여행을 선택한 것을. 또한 다짐했다. 언젠가는 이 도시로 돌아와 못 가본 저 골목들을 둘러보리라고.

 

오래도록 나는 후회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후회란 시간, 감정, 열정을 과거의 텅 빈 구멍으로 흘려보내는 소모적인 행위라 여겼다. 살면서 실수나 실패가 있었다면 그것을 교훈으로 삼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라는 주제의 청탁을 받고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는 후회되는 일이 한 가지만이 아니었다. 매순간, 모든 일에서 무수히 후회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가 김형경 ㅣ 출처:경향DB

 

20여년 전 어느 날, 추운 겨울 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여m 앞쪽에서 할머니 한 분도 무거워 보이는 보따리를 든 채 나처럼 택시를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마침 저쪽에서 택시가 다가와 내 앞에 멈추어 섰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할머니께 양보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두 마음은 찰나의 섬광처럼 충돌했고 다음 순간 나는 이미 택시를 타고 있었다.

 

그날 남은 시간 내내 겨울 거리에 서 계시던 할머니 모습을 머리에서 지워낼 수 없었다. 그 분이 혹시 몸이 불편하셨던 건 아닐까, 그 보따리가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니었으면…, 이토록 마음이 쓰이는 것은 위선 아닐까. 나중에는 차라리 약속시간에 조금 늦는 편이 한결 나았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토록 복잡하고 불편한 마음이 곧 내 행위에 대한 후회였을 것이다.

 

나는 늘 후회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길을 묻는 노인에게 손짓만으로 길을 알려드린 점, 먼 길 가는 후배에게 차비를 더 넉넉히 주지 않은 일, 낯선 이에게 친절보다 경계의 눈길을 보낸 일, 바가지 씌운 사람에게 혼자 화낸 일 등. 그런 일들에 대해 뒤늦게 마음이 불편해지면 그것은 후회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후회의 순간들이 있었기에 동일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불편한 마음을 안은 채 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같은 상황이 오면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나는 후회했다, 고로 나는 변화했다.

 

오래전에 꿈꾸었던 프라하 단독 여행은 아직도 꿈꾸는 중이다. 대신 그 후 한동안 여행은 무조건 혼자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가보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둘러보고, 머물고 싶은 시간만큼 충분히 머무는 것을 즐겼다. 그것이 여행이라는 행위의 본질에 더 깊이 닿을 수 있는 방법 같았고, 내면과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단독 여행의 미덕들을 충분히 누렸다고 느꼈을 무렵 다시 단체여행의 일원으로 끼어 유람하는 안락함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은 내게 생이 몇 년쯤 남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대로 살다가 죽을 때 후회하게 될 일은 무엇일까 꼽아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더 많은 햇볕을 쬐지 못한 일, 더 오래 숲길을 걷지 못한 일, 더 많은 꿈을 꾸지 못한 일 등.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나는 후회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