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65) 구효서 - 단풍 든 암자의 그 모시잎떡


구효서 소설가

 

 


새벽 두 시. 나는 어느 집 담장에 붙어 섰다. 스물두 살 청년이었던 내 손에는 M16 소총이 들려 있었다. 숨을 죽이고 집안의 동태를 살폈다. 내 곁의 동료도 긴장한 눈을 번뜩이며 철모를 깊숙이 눌러 썼다. 종이를 태운 검은 재를 얼굴에 바르고 있어서 달이 없던 밤이었으나 대원들의 눈은 희끗거렸다. 소대장과 파견 경사가 대문을 두드리며 물은 직후였다.

 

“○○○씨 계십니까?”

 

집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나는 ‘유사시’란 말을 한번 더 되새겼다. 병영의 국기 게양대에 검은 리본이 걸렸을 때도 누가 죽었는지 몰랐다. 10월의 하늘에 무심하게 펄럭이는 조기를 보며 아침을 먹고, 오줌을 누고, 오전 훈련을 위해 장비를 점검할 때 내무반 스피커가 대통령의 서거를 짧게 알렸다. 조기가 먼저고 뉴스는 나중이었다. 사병에게는 늘 그랬다. 이유도 모르고 7일 동안 양말과 전투화를 신은 채 잤다. 전투복을 벗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광주 때문이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때부터 장병들의 입에서 ‘유사시’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튀어나왔다. 어째서 새벽 두 시에 민가를 포위하고 사람을 잡아들이는지도 사병들은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야 알게 될 터였다. 피살에 의한 서거였다는 것도, 광주의 참상도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듯이.

 

소설가 구효서ㅣ 출처:경향DB

 

한번 더 소대장과 파견 경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자 그들은 조심스레 집안으로 들어섰다. ‘유사시’를 대비해 나는 담 밖에서 총을 움켜쥐었다. 소대장이 전투화를 신은 채 툇마루로 막 올라서려는 순간, 희끗한 것이 담장을 넘었다.

 

“잡아!”

 

소대장이 외쳤고, 잠옷 바람으로 담장을 넘던 남자는 나를 비롯한 십 수 명의 무장 대원에게 무참히 제압당했다. 그런 일은 아침이 되도록 계속되었다. 삼청교육대 입소 대상자들이었다. 삼청5호계획이라는 말도 나중에 들었다. 사병이었던 나는, 이처럼 이유도 모른 채 동원됐고 일의 전말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후회도 이처럼 늦은 걸까. 이처럼 늦은 게 정당한 걸까. 후회라니. 어째서 사과가 아닌 후회일까. 사과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누구도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던 장병들을 대표할 수 없다. 그러니까 후회란, 사과의 개인적 전단계라 할 수 있다. 사과를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은 나 개인의 반성과 후회를 거쳐 도달해야 할 곳이다.

 

그해 가을 새벽 비상 출동도 잊히지 않는다. 같은 방식으로 사찰을 포위하고 스님들을 색출했다. 검거선풍이 일던 때라 대부분의 색출 대상 스님들은 미리 잠적해 버리고 없었다. 높은 산을 오르내렸으나 번번이 허탕을 쳤고 아침을 맞았다. 피로한 병사의 눈에도 가을 단풍은 눈부셨다. 법당을 수색하고 나서는 우리에게 공양주 보살이 모시잎떡을 내밀었다.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좀.” 밥솥에 쪘는지 갈매빛 떡에 밥알이 듬성듬성 묻어 있었다. 스님 잡으러 온 군인한테 떡이라니! 외면하고 돌아서면 그만일 것을, 나는 보살에게 면박을 주고 말았다.

 

후회한다. 사과는커녕 이제껏 후회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사실은 작고 귀여운 후회 하나를 여기에 쓰려 했다. 원고지 열 장 정도의 분량이라면 그런 내용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무시로 나를 찌르는 후회가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인정했다. 이제껏 후회하지 않은 게 아니라, 후회를 억눌러 왔다는 것을. 그때는 군인의 신분이었고 나 개인에게 허용된 자유가 없었으며 따라서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치스 친위대 장교 아이히만과 태평양전쟁 전범들의 변명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인류와 평화에 대해 사유하지 않은 게 그들의 죄라면, 나의 죄는 후회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비로소 이 작은 지면에 후회의 글을 적는다. 후회하지 않았거나, 후회했더라도 그것을 애써 누르거나 모른 체한 것, 그리고 너무 때늦었다는 것 모두, 후회한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이 후회가 적절한 사과의 방식을 찾아내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