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노래와 세상]한국 최초의 래퍼 서영춘

어린 시절 삼촌이 애지중지하던 전축 진열대에 마르고 닳도록 듣던 음반이 있었다. 몇 장 되지 않았기에 지금도 어떤 가수의 음반이었는지 외울 정도다. 그중에서도 유독 튀는 음반이 있었다.

 

<서영춘과 백금녀의 가요 폭소코미디, 갈비씨와 뚱순이의 애정행진곡>(1964)이 그것이었다. 서영춘과 백금녀는 지금으로 말하면 김국진과 이영자의 조합쯤 될까?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만담 사이에 코믹한 노래가 곁들여졌다. 이 음반에서 서영춘은 한국 최초의 랩이라고 할 만한 속사포 코믹송을 선보인다. 제목이 따로 없지만 대략 ‘산에 가야 범을 잡고’쯤 된다.

 

“이거다 저거다 말씀 마시고/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길 잡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의 일본어) 없이는 못 마십니다/ 산에 산에 산에 사는 산토끼야/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 가느냐/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가보자/ 선생님이 문 앞에서 기다리신다/…징지기 장장 징장장/ 지기지기 장장 장장.”

 

탁월한 애드리브로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사했던 서영춘은 한국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다. 그는 무대가 달라질 때마다 상황에 맞는 코믹송을 구사할 줄 아는 코미디언이었다. “차이콥스키 동생 두리스 위스키 작곡 시장조 도로또 4분에 4박자” 운운하면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서영춘의 랩은 요즘 래퍼들과 배틀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 음반에서 눈에 띄는 또 한 곡의 노래는 ‘서울구경’이다. 1936년 배우 최민수의 외할아버지 강홍식이 번안해 부른 이 노래 역시 래퍼 서영춘의 진가를 증명한다.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 놀이라/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갱이하네/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소/ 깎아달라고 졸라대니 원 이런 질색.’

 

이제 곧 설날, 떠들썩한 명절 풍경을 되찾을 날이 기다려진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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