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정재왈의 아트톡] 뮤지컬 영화 ‘영웅’ 다음 뮤지컬의 공통점은? ①소설 원작 ②역사물 ③영화화 ④창작뮤지컬 답은 ③번이다. 인기를 끈 뮤지컬이 영화로 만들어진 사례들이다. 창작뮤지컬 외에 세 작품은 외국 뮤지컬이다. 웬만한 뮤지컬 애호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뮤지컬 고전이다. 위의 작품들처럼 성공한 뮤지컬을 다시 영화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역으로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명작이 뮤지컬로 제작되기도 한다. 국내외 사례를 따질 것 없이 드물지 않은 일이다. 이런 식으로 동일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작, 활용하는 것을 ‘원소스 멀티유즈’(OSMU)라고 한다. 콘텐츠산업의 기본 전략의 하나로 자주 거론된다. 한 가지 소재를 다양하게 변용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게 목적이다. 뮤지컬 역사를 거슬러 보면, 이런 OSMU식 부가가치 확장 전략은 1.. 더보기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위험사회의 징조 영화 의 포스터 1970년대 초반 할리우드의 대세는 재난영화였다. 20세기폭스에서 제작한 해양재난물 가 대박을 쳤다. 이에 자극받은 워너브러더스에서 고층 빌딩의 화재 사건을 소재로 도시재난물을 기획하지만 폭스에서도 같은 소재의 영화를 준비한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될 블록버스터가 같은 소재로 맞붙는다면 두 제작사 모두에 재앙이 될 게 뻔했다. 쇼비즈니스에서 양보란 미덕은 없다. 은 거대 제작사 두 곳이 합작해 만든 최초의 영화가 되었고 기대대로 크게 성공했다. 마천루의 화재를 다룬 제작의 중심에는 프로듀서 어윈 앨런이 있었다. 의 물난리에 이어 의 불난리까지 어윈 앨런의 솜씨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의 불씨는 그리고 한국영화 에 옮겨붙을 만큼 스펙터클한 비극의 원형이다. 의 원제는 ‘타워링 인페르노’로.. 더보기
[정재왈의 아트톡] ‘클래식 르네상스’ 그 후 “풍부한 인문과 교양의 시작은 좋은 글과 문장이다. 요새 클래식을 매개로 한 재기발랄하며 깊이 있는 문장가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언론과 학계, 예술가 사이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전성기의 도래를 실감한다.” 지난 7월 이 지면에 쓴 내 칼럼의 한 대목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놀라운 연주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였다. 나 또한 감동(아니 흥분)하여 이 무렵 ‘한국 클래식의 르네상스’라는 글을 썼었다. 우선 임군과 같은 수많은 젊고 훌륭한 연주자들의 등장을 주목했다. 지금이 클래식 르네상스, 즉 전성기라면 그 시대의 주역은 그들의 몫이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정작 그때 칼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너머’에 있었다. 앞의 인용문에 그 의도가 담겨있다. 마침 글 잘 쓰는 클.. 더보기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용서하지 않을 자유 콰이강의 다리 위에서 화해한 에릭 로맥스(왼쪽)와 나가세 다카시. 경쾌한 휘파람 행진곡으로 유명한 는 1958년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주요 부문을 석권한 명화다. 일본군 군수품 수송을 위한 버마-시암(미얀마-태국) 간 철도, 일명 ‘죽음의 철도’ 공사에 동원된 영국군 포로들과 일본군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영국군 포로를 대표하는 니콜슨 대령은 견고한 원칙주의자다. 제때 공사를 마쳐야 하는 일본군 사령관은 총동원을 명령한다. 니콜슨은 장교는 지휘할 뿐 노동하지 않는다며 원칙을 고수하며 거부한다. 자신과 장교들의 목숨을 건 위험한 저항 끝에 사령관의 고집을 꺾은 니콜슨은 영국군의 선진 기술과 경험을 자랑하며 명예롭게(?) 다리 건설에 참여한다. 일본군의 전승을 위해 튼튼하게 축조되는 다리를 흐뭇하게 바.. 더보기
[정재왈의 아트톡] ‘안다박수’와 추임새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나 관객이 소리판의 흥을 돋우기 위해 곁들이는 감탄사를 추임새라고 한다. 소리꾼의 노래인 창(唱)과 사설인 아니리, 몸짓인 발림(너름새)과 함께 판소리의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다. ‘얼쑤’ ‘조~타’ ‘자~알 한다’ ‘지화자’ 등. 북 반주자인 고수를 따라 하거나 관객이 제 멋에 겨워 수시로 내뱉는 이런 말들이다. 노래와 아니리, 발림이 무대 주인공인 예술가의 몫이라면 추임새는 관객의 몫이다. 이처럼 공연 중에 적극적으로 관객의 개입이 허락되어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묶는 것은 판소리의 매력 중에 어쩌면 으뜸일지도 모른다. 등장인물에 다양한 성격을 부여한 ‘판소리 음악극’인 창극에서도 추임새는 현장감을 고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리 전통공연에서 관객을 그만큼 중히 여겼다는.. 더보기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청각 교란의 시대 빛이 있으라는 신의 음성과 함께 세상이 시작되었다. 소리는 우주의 기원이다. 청각은 전방위적으로 켜져 있다. 문명은 오랜 기간 청각에 의지해왔다. 귀 밝은 이들은 선대가 전하는 정보를 활용하고, 후대에 전했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귀한 자질이었다. 인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복잡해지자 이야기 형식을 고안해 기억을 도왔다. 이야기는 유흥이 아닌 생존을 위한 교육이었다. 단백질 확보를 위한 사냥의 적시와 적소, 맹수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필살기가 부족의 영웅서사에 담겨 전습되었다. 이야기를 듣다 한눈을 팔거나 졸다가는 사냥터에서 돌아올 수 없었다. 잘 듣는 자만 살아남았다. 이때의 습성이 유전되어 우리는 소설과 영화 같은 서사 양식에 시간과 돈을 쓴다. 영화를 본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이야기를 듣는 것에 다름.. 더보기
[정재왈의 아트톡] 창신해야 법고도 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를 계기로 쏟아져 나온 많은 어록 가운데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말은 현대와 대화하려는 역사와 전통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의 상태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대명천지 민주국가에서 군주제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안정적으로 70년 권좌를 지킨 여왕의 용단이 놀라웠다. 단순 현상유지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 나갈 때 오히려 현상을 더 견고하게 지킬 수 있다는 역설의 지혜에 간담이 서늘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초반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담한 결단력과 감각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칠 총리 등 노련한 정객과 국제정치 문제에 직면한 여왕은 지식의 부족을 절감한다. 이때 독선생으로 삼은 이튼스쿨 부학장이 헌법은 ‘위엄’과 ‘효.. 더보기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자결한 감독, 시네마의 황혼 장뤼크 고다르 감독(사진)이 자결(自決)했다. 세상과 불화한 노감독의 죽음은 안락사로 타전되었지만 공식적으로 ‘조력자살’이었고, 엄밀히는 자결이었다. “그는 아팠던 게 아니라 고갈된 것입니다.” 유가족은 노감독의 결단 배경을 간명하게 설명했다. 더 이상 표현할 것이 없으니 끝내겠다는 단호한 결정의 과정에는 고다르의 예술적 이력이 함축되었고 유언에 값하는 울림이 있었다. 당돌한 데뷔작으로 출발해 도발적 실험작으로 이어진 고다르의 모든 작품은 영화를 주제로 응축되었다 확장되는 변주곡이었다. 영화가 주인공이자 배경이자 사건인 영화. 청년 고다르는 옛날 영화를 보고 시네클럽에서 토론하며 영화와 접속했다. “밤이었다…” 이후 한 문장도 더 쓰지 못한 소설, 그림도 그려봤지만 안 맞았다. 표현 도구로써의 영화를 발.. 더보기
[정재왈의 아트톡] 아시아의 영혼 3년 전 지금의 일터에 오면서 서둘러 한 일은 공연과 전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개관 초기에 비해 한참 뒷걸음친 아트센터의 명성을 획기적이진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변화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앞섰다. 고양아람누리와 어울림누리 5개의 대·소극장과 콘서트홀은 규모와 시설 면에서 손색없다. 그동안 내용물이 좀 문제였다고 봤다. 직원들에게 수준 높은 작품 물색을 주문하면서 브랜드 만드는 일을 병행했다. 아이디어를 모았더니 막내 직원의 그것이 제법 맘에 들었다. 그렇게 정한 브랜드 이름을 바탕으로 내가 직접 로고를 디자인하여 우리만의 브랜드가 나왔다. 영어 알파벳 두문자(ASGY)와 객석을 와이파이 파장으로 형상화한 ‘아트시그널고양’이다. 예술의 발신지 고양이란 의미를 담았다. 이것을 자체 기획 프로.. 더보기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반도 공화국의 훼방일지 불가사의한 정치인 줄리오 안드레오티(사진)는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 시사회에 초대되었다. ‘신이 내린 남자’란 뜻의 ‘일 디보’는 안드레오티의 별명이었다. 그는 고위직을 두루 거치며 총리직을 7번이나 역임한 거물 정치가였다. 영화는 안드레오티를 동료일지라도 방해가 될 때는 주저 없이 처치하는 잔혹한 마키아벨리스트라 고발하고 있었다. 스크린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불쾌한 영화였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답게 조용히 극장을 나왔다. 미수의 노신사는 서운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미지가 왜곡될 것이 우려됐다. 엉망이었던 영화계를 회생시킨 공로자를 우롱한 감독 녀석이 괘씸했다. 안드레오티는 파시즘으로 불구가 된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려 노력한 공화주의자였다. 그의 정치적 감각과 과감한 행정 능.. 더보기
[정재왈의 아트톡]한국 클래식의 르네상스 국제 콩쿠르 입상자에게도 나라에서 카퍼레이드를 해준 때가 있었다. 48년 전의 일로, 지휘자 정명훈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20세 약관의 촉망받는 피아니스트 정씨는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등을 차지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쇼팽과 퀸 엘리자베스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통한다. 정씨의 카퍼레이드에 얽힌 일화가 있다. 이 빅 이벤트의 기획자로 훗날 문화행정의 거목이 된 고 이종덕씨가 에서 밝힌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공부 공연과에 있던 1973년, 모스크바에서 생각지 못한 낭보가 날아들었다.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으로 입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예술의 나라 러시아에서 주최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인들의 경합 .. 더보기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엘비스, 의존성 성격장애의 비극 전후 젊은이들의 성적 충동은 로큰롤로 분출되었다. 무대의 중심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다. 얌전히 음악을 감상하던 소녀들이 엘비스에 홀려 괴성을 지르고 급기야 속옷을 벗어 던졌다. 엘비스가 흔드는 요란하고 음란한 골반은 어른들을 심란하게 했다. 엘비스의 흥건한 로큰롤은 시대를 흥분시킨 사건이었다. 나는 70대 이상 할머니들의 얼굴에서 그 시절의 잔망스러운 소녀를 찾을 때가 있다. 청춘의 달뜬 표정을 복원하려 애쓰지만 가난한 상상력 탓에 실패한다. 최근 개봉한 에서 소녀들을 만날 수 있다. 열광 끝에 혼절하는 소녀들의 광기와 말세를 한탄하는 부모들의 당혹감이 교차된다. 영화는 전대미문의 기현상에 주목하는 흥행사 톰 파커 대령(톰 행크스)의 시점으로 희대의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엘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