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정재왈의 아트톡] 아시아의 영혼

3년 전 지금의 일터에 오면서 서둘러 한 일은 공연과 전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개관 초기에 비해 한참 뒷걸음친 아트센터의 명성을 획기적이진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변화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앞섰다. 고양아람누리와 어울림누리 5개의 대·소극장과 콘서트홀은 규모와 시설 면에서 손색없다. 그동안 내용물이 좀 문제였다고 봤다.

직원들에게 수준 높은 작품 물색을 주문하면서 브랜드 만드는 일을 병행했다. 아이디어를 모았더니 막내 직원의 그것이 제법 맘에 들었다. 그렇게 정한 브랜드 이름을 바탕으로 내가 직접 로고를 디자인하여 우리만의 브랜드가 나왔다. 영어 알파벳 두문자(ASGY)와 객석을 와이파이 파장으로 형상화한 ‘아트시그널고양’이다. 예술의 발신지 고양이란 의미를 담았다. 이것을 자체 기획 프로그램에 우선 적용한 뒤, 외부 협력 프로그램을 위한 하위 브랜드도 만들었다. ‘아트시그널고양-링크’로 이름을 달았다. 이렇게 한 브랜드로 일관성을 꾀한 덕분에 코로나 난국에서도 아트센터의 명성은 점차 회복됐고 프로그램 신뢰도도 한결 높아졌다.

브랜드가 영리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만 여겨지던 시절은 지났다. 공연장이나 미술관, 예술단체에서도 브랜드의 의미와 가치를 매우 중히 여겨진다. 이른바 ‘낙인효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낙인효과는 과거의 좋지 않은 이력이 현재까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뜻한다. 여기서는 그 효과성을 역으로 뒤집어 긍정적인 의미로 쓴다. 아트시그널고양도 그런 효과를 노렸다.

성공한 예술 브랜드가 가져온 좋은 낙인효과엔 이런 예도 있다. 코로나19 창궐로 사회가 비대면으로 전환되자 공연 재생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다.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영국 로열내셔널시어터의 ‘엔티 라이브(NT Live)’나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메트 오페라 온 스크린(Met Opera on Screen)’이 주목받았다. 생생하게 현장감을 살린 스크린 이용이 폭증했다. 저명한 단체의 우수 레퍼토리와 기술력이 합해져 막강 동영상 브랜드파워가 형성됐다. 예술의전당의 자체 개발 공연 동영상 라이브 브랜드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도 유용한 쓰임새를 인정받았다.

초점을 바꿔 브랜드 개발에 고심하는 지자체 사정도 좀 살펴보자. 효과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브랜드파워를 강조하는 기업은 물론, 그보다 덜 경쟁적이면서 ‘무형의 가치’를 강조하는 예술에서도 요즘 브랜드 브랜드 한다. 뒤질세라 지자체도 여기에 뛰어들어 홍수가 났다. 

서울시의 시도와 열정도 예외는 아니다. 단체장의 부침에 따라 지자체가 내세우는 브랜드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지자체의 보편적인 현상이니 어딜 특정하여 탓할 수는 없다. 서울시는 전임 시장 때 개발하여 사용한 ‘아이 서울 유(I SEOUL YOU)’ 브랜드를 폐기하고 공모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선정할 새 브랜드를 내년부터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시 설문 조사에서 ‘새 브랜드 제작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70%에 이른다. 이 정도면 변경의 당위성을 확보한 것으로 치고, 앞으로 뽑힐 새 브랜드는 정치 바람에 상관없이 수십년 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이 세계의 주축도시를 지향한다면, 도시 브랜드의 성공 사례로 늘 입에 오르내리는 뉴욕의 ‘아이 러브 뉴욕(I ♥ NY)’이나 암스테르담의 ‘아이 암스테르담(I amsterdam)’급 이상으로 멋진 브랜드와 걸맞은 로고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보는 즉시 이해되고, 굳이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쌈박한 브랜드 말이다.

사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그런 급의 서울 브랜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겠으나, 전에 ‘하이 서울(Hi Seoul)’ 아래 설명문처럼 붙어 있던 이 말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서울, 아시아의 영혼(Seoul, Soul of Asia).’ 서울과 ‘소울’의 비슷한 발음이 자연스레 이어지면서 뭔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뉘앙스가 멋있었다. 아시아 핵심 도시의 느낌! 산산이 부서진 이름, 서울시의 브랜드 변경 소식을 듣고 아쉬워 그냥 불러본다.

<정재왈 예술경영가·고양문화재단 대표>

 

 

 

연재 | 정재왈의 아트톡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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