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지난해 말 한국의 첫 경양식집이었던 ‘서울역 그릴’이 문을 닫아 아쉬움을 남겼다. 경양식(輕洋食)을 다른 말로 하면 ‘가벼운 서양요리’쯤 될까. 돈가스, 함박 스테이크,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등을 팔았으나 가격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경양식집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그것이다. 고급 경양식집에는 으레 피아노가 있었고, 아르바이트하는 피아니스트도 있었다. 저 1980년대, 이 곡은 언제나 리퀘스트 0순위였다. 피아노가 없다면 LP로라도 자주 플레이를 해야 했다. 양식 먹는 에티켓을 책으로 배워서 모처럼 경양식집을 찾은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주곡이 발표된 건 1977년이었다. 프랑스의 작곡가 폴 드 세느비유와 프로듀서 올리비에 투생은 연주자를 찾기 위한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다. 음악원 출신의 스물세 살의 미남 청년 리처드 클레이더만이 선발됐다. 그렇게 만든 데뷔앨범이 1000만장 이상 팔렸고, 유럽에서는 피아노 판매가 급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라디오의 시그널송, 결혼식 연주곡, 시 낭송 배경음악 등 안 쓰이는 데가 없었다. 순식간에 피아노곡의 대명사가 됐다. 어쩌면 이 연주곡 때문에 경음악, 혹은 세미클래식이라는 용어가 더 자주 쓰였는지도 모른다.

이후에도 리처드 클레이더만은 ‘가을의 속삭임’ ‘에덴의 놀라운 세계’ ‘엘자의 첫 슬픔’ 등을 발표했지만 ‘아드린느…’를 뛰어넘지 못했다. 1985년을 시작으로 몇 차례 내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53년생인 그는 아직도 기념 음반을 발매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나 예전만 한 인기를 누리지는 못한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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