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사랑가 사랑 노래는 지천이다. 민요에서 힙합, 댄스 음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김영동의 ‘사랑가’는 여러 가지로 특별하다. “사랑을 얻었네. 하늘같이 큰 사랑/ 선녀님같이 울엄니 같이 크나큰 사랑 나는 얻었네/ 해가 가고 달이 가도 내 사랑 위해 죽기라도 하겠네/ 사랑을 얻었네/ 무서워요 두려워요. 이 행복이 부서질 것 같아/ 사라질 것 같아요. 내 맘엔 사랑이 깃들 수가 없나요.” 민요와 가요의 어디쯤인 국악가요 형식의 노래로 사랑의 떨림을 아름답고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곡가인 김영동이 이 노래를 만든 건 1975년 국악 뮤지컬 의 음악을 만들면서였다. 20대 시절에 김민기와 소주를 마시면서 “로이드 웨버가 20대에 같은 대작을 만들었는데 우리도 뮤지컬 하나쯤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김민기.. 더보기
응원가 오일머니의 위력으로 겨울에 열리면서 다소 김이 빠졌지만, 월드컵은 여전히 지구인의 가슴을 뛰게 한다. ‘어게인 2002년’이 대한민국 월드컵의 슬로건이지만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못지않게 스타가 된 가수가 있었다.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른 윤도현밴드(현 YB)였다. 붉은악마가 제작한 이 노래는 유럽 프로축구 현장에서 구전돼 온 응원가였다. 애당초 붉은악마 측이 남성 듀오 캔에 제안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거절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이후 나온 수많은 응원가가 이 노래를 뛰어넘지 못하는 걸 보면 응원가는 월드컵 성적에 비례한다. 축구에 광적인 유럽대륙으로 가면 응원가가 넘쳐난다. 그룹 퀸이 부른 ‘위 윌 록 유’와 ‘위아더 챔피언’은 응원가의 고전이 됐다. 요즘.. 더보기
미련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에/ 보고 싶어 가고 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미련 없이 잊으려 해도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가을 하늘 드높은 곳에 내 사연을 전해 볼까나.” 신중현이 만들고 장현(본명 장준기)이 부른 ‘미련’은 쓸쓸한 가을의 정서가 잘 반영된 곡이다. 서양에 비틀스가 있다면 동양에 신중현 사단이 있었다. 다소 과장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비틀스와 동시대에 펄시스터즈, 김추자, 김정미, 이정화 등을 배출한 신중현은 가히 천재적이다. 그 사단의 대표적인 남자 가수가 장현이다. ‘기다려주오’ ‘마른 잎’ ‘나는 너를’ ‘석양’ 등 장현의 히트곡은 신중현의 손끝에서 나왔다. 신중현에 따르.. 더보기
대니 보이 “맑은 날이나 흐린 날에도 여기서 너를 기다린다/ 만약 네가 꽃이 시드는 것처럼 지고 만다면/ 나는 네가 누울 땅을 찾고 작별인사를 준비해야겠지.” 자메이카 출신의 미국 가수 해리 벨라폰테가 부른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를 듣다가 눈물을 훔쳤다. 노랫말은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경을 담았지만, 자식을 앞세우고 몸부림치고 있을 이 땅의 부모들이 생각나서였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노동현장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그 어떤 노래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해리 벨라폰테의 목소리는 치유의 힘이 있다. 가수이자 배우, 인권운동으로 유명한 그는 1927년생으로 작고한 송해 선생과 같은 나이다. 1950년대부터 활동했지만 지금도 사랑받는 노래들이 많다. 명반으로 남은 1959년 카네기홀 공연실황.. 더보기
레인코트와 코언 “아, 지난번 우리가 당신을 봤을 때 많이 늙어보이더군/ 당신의 그 유명한 푸른 레인코트는 어깨가 해져 있었지/ 당신은 기차역에서 모든 기차를 기다리다가/ 릴리 마릴렌 없이 혼자 집으로 왔더군.” ‘페이머스 블루 레인코트’는 모호하지만 시적인 가사로 듣는 이의 마음을 휘젓는다. 레너드 코언의 모든 노래가 그렇듯이 속삭이는 듯한 중저음의 울림이 이 가을과 잘 어울린다. 11일이면 그가 떠난 지 6주년. 깊은 사색과 통찰로 사랑과 고독, 시회 부조리, 종교와 전쟁까지 다양한 메시지를 던진 그는 진정한 음유시인이었다. 1971년 발매된 그의 세번째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에 놓인 상대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의 노래다. 코언은 ‘성적 속박에 대한 비난’을 담았다고 밝힌 바 있지만, 사랑하는 여.. 더보기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풋풋한 첫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내 걸린다. 가을과 사랑을 그린 노래들도 자주 들린다. 짧은 가을이 지나간다. 가을날에는 뜨겁고 열정적이기보다는 은근하면서도 애가 타는 사랑이 어울린다. 그런 사랑을 노래한 수많은 노래 중에서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은 으뜸이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영원한 것/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그리움은 남는 것….” 선배 가수인 진방남과 남진이 먼저 불렀지만, 이은하가 불러 비로소 히트곡이 됐다.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일찌감치 가수 수업을 받은 그는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어떤 노래든 명품으로 만들었다. 당시 패티김은 “대형가수라는 호칭은 이제 이은하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1.. 더보기
오동잎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적막을/ 어이해서 너만은 싫다고 울어대나/ 그 마음 서러우면 가을바람 따라서/ 너의 마음 멀리멀리 띄워 보내 주려무나.” 오동잎은 무성했던 여름날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널찍한 잎이 지는 가을에서야 보인다. 그래서인가. “벽오동 싶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나”(투코리언스, 벽오동)와 “거기엔 오동나무 한 그루하고/ 같이 놀던 소녀 하나 있었지/ 넓다란 오동잎이 떨어지면/ 손바닥 재어 보며 함께 웃다가”(송창식, 나의 기타 이야기)처럼 주로 상실의 대상이다. 지내놓고 보니 ‘오동잎’의 가수 최헌은 가을에 최적화된 보이스의 소유자였다. 록그룹 히식스와 검은 나비에서 활약하던.. 더보기
해 뜨는 집 쌀쌀한 가을 저녁, 거친 노동을 끝낸 이들이 하나둘 선술집에 모여든다. 한 잔 술에 거나해지면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내 누구랄 것도 없이 따라 부르면서 술집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더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은 그런 분위기에서 부를 만한 노래다. 영국의 밴드 애니멀스(사진)가 1964년에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원곡은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부르던 민요였다. ‘해 뜨는 집’이라는 제목과 달리 노랫말은 음울하면서도 비장하기까지 하다. “엄마는 재단사였어요/ 나에게 새 청바지를 만들어 주셨지요/ 아빠는 노름꾼이었어요/ 뉴올리언스에서 망가지셨지요”를 거쳐 “엄마는 자식들에게 말했지요/ 나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죄를 지으며 비참하게 살지 말라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해뜨는 .. 더보기
사랑할수록 “한참 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저 언덕 너머 거리엔…”으로 시작하여 “시간이 흘러 지날수록/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너에게 난 아픔이었다는 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으로 치닫는 노래 ‘사랑할수록’(1993)은 실연의 상처를 겪은 이들에게는 비수(匕首)와 같은 노래다. 듣다 보면 실연의 아픔은 더 커지고, 부르다 보면 목이 쉬기 일쑤였다. 그 중심에는 요절한 가수 김재기가 있다.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정동하 등 부활을 거쳐간 걸출한 보컬이 많았지만, 김재기는 짧은 시간 동안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헤비메탈 그룹 뉴작은하늘의 멤버인 김재기를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친구인 장동명 목사의 소개로 만난 김재기가 그룹 나자레스의 ‘러브 허츠’를 불렀을 때 김태원은 전율했다. 고음과 저음을.. 더보기
‘아이스크림 사랑’의 역주행 국내 첫 뮤지컬영화를 표방한 에는 7080 히트곡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세연(염정아)이 여고생(박세완) 시절 첫사랑이었던 정우(옹성우)와 함께 부르는 ‘아이스크림 사랑’은 풋풋하면서도 정겹다. 주크박스 뮤지컬답게 이문세의 ‘조조할인’, 신중현의 ‘미인’ 등이 적재적소에서 흘러나오지만 유난히 이 노래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사랑스러운 두 배우의 춤과 노래가 첫사랑의 추억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부른 임병수는 볼리비아에서 온 가수였다. 1985년 발표됐을 때도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이색적인 노랫말로 주목을 끌었다. 곱상하게 생긴 청년이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다섯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간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래를 불러 현지.. 더보기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나.”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은 2015년 갤럽 조사에서 ‘가을 하면 생각나는 노래’ 1위를 차지했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제친 결과였다. 우리네 마음속에서 코스모스는 귀뚜라미와 함께 ‘가을의 전령사’가 된 지 오래다. 가을이 되면 지천으로 피는 꽃이긴 하지만 볼 때마다 늘 반갑고 정겹다. ‘빨간 구두 아가씨’ ‘조약돌’ 등의 노랫말을 쓴 하중희가 작사하고, KBS 관현악단장이자 지휘자였던 김강섭(지난 8월 작고)이 작곡했다. 1967년 지구레코드에서 만든 편집 음반인 김강섭.. 더보기
가을 편지 편지가 사라진 시대지만 편지를 소재로 한 노래는 여전히 넘쳐난다. 특히 가을은 편지와 궁합이 잘 맞는 계절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가을 편지)은 이미 가을 노래의 대명사가 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은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였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는 어니언스의 임창제가 작사·작곡한 곡이고, “편지를 썼어요. 사랑하는 나의 님께/ 한 밤을 꼬박 새워 편지를 썼어요”는 이장희가 만들고 불렀다. 두 곡 모두 ‘편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노래다. 동물원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는 가을과 편지가 어우러진 노래의 백미다. “난 책을 접어 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