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철 지난 바닷가 사람으로 넘쳐나던 여름 바다가 썰렁해질 때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다.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 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그것은 소리 없는 사랑의 노래/ 옛일을 생각하며 혼자 듣는다.” 여름과 가을 사이 최고의 시즌송을 꼽는다면 단연 으뜸이 아닐까. 1973년 발표된 에 수록된 이 노래는 ‘꽃보다 귀한 여인’ ‘꽃, 새, 눈물’과 동반 히트했다. 최영호 작사로 발표된 이 노래는 ‘고래사냥’ ‘밤눈’ ‘꽃, 새, 눈물’과 더불어 소설가 최인호와 합작한 명곡이다.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정의된 1970년대 청년 세대의 선두주자였던 송창식과 최인호는 .. 더보기
항일의 역사, 아리랑 8월이면 유독 자주 들리는 노래가 있다. 바로 민요 ‘아리랑’이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아리랑은 60여종, 3600여곡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이를 살펴보면 유독 항일(抗日)과 관련된 노래들이 많다. “할미성 꼭대기 진을 치고/ 왜 병정 오기만 기다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경북 문경의 고모산성을 할미성으로도 불렀기에 임진왜란 때 그곳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항일영화 (1926년·사진)을 만든 나운규 감독은 ‘경기 아리랑’을 바탕으로 만든 ‘아리랑’을 영화 주제가로 썼다. 이 노래가 유행하자 일제는 ‘아리랑 금창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조왕 말년에 왜 난리 나니/ 이천만 동포들 살길이 없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 났네/ 독립군 아리랑.. 더보기
비는 추억을 불러낸다 비는 추억을 불러낸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때문에 우산을 같이 쓰면서 시작된 연애담부터 실연을 당하고 하염없이 빗속을 걸었던 남자들의 이야기까지 그 소재도 다양하다. ‘너의 맘 깊은 곳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고개 들어 나를 보고, 살며시 얘기하렴/ 정녕 말을 못하리라. 마음 깊이 새겼다면/ 오고 가는 눈빛으로 나에게 전해 주렴/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김정호가 만들고 금과 은이 불러 히트한 ‘빗속을 둘이서’(1976)는 그런 추억을 불러내는 데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다. 이 노래를 만든 김정호는 ‘이름 모를 소녀’(1974)로 데뷔한 실력파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는 친구인 어니언스의 임창제에게 ‘사랑의 진실’ ‘작은 새’ 등의 노래를 만들어줬고, 투에이스에게 이 노래를 선물하.. 더보기
강변가요제 강변가요제가 다시 부활한다는 소식이 있다. 여름철 해변이나 강변에서 열린 오디션 프로그램은 TBC 라디오 해변가요제가 효시였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해안의 연포해수욕장에 콘도를 건설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또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대학가요제의 대항마로 시작했다. MBC 강변가요제는 1979년 시작하여 경기도 청평유원지, 남이섬, 춘천의 공지천과 중도유원지에서 개최되다 2001년 막을 내렸다. 더 이상 스타를 배출하는 창구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드팬이라면 강변가요제가 배출한 스타들의 면면을 잘 기억할 것이다. 관객으로 온 여중생의 치마를 빌려 입고 ‘J에게’를 열창한 이선희를 비롯하여 겅중거리면서 ‘담다디’를 불렀던 이상은(사진)은 그 무대까지도 생생하게 기억.. 더보기
사랑해요 ‘새벽공기를 가르며 나는/ 새들의 날개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라고 쓴다.’ - 사랑일기 이 노래가 수록된 ‘시인과촌장’의 2집(1986년)은 명반으로 꼽힌다. ‘한계령’과 ‘가시나무’로 유명한 하덕규와 탁월한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합작한 이 앨범은 ‘푸른 돛’ ‘고양이에게’ ‘진달래’ ‘풍경’ 등 서정의 극치를 이룬 곡들로 가득하다. 요즘처럼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들으면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하덕규가 그린 파스텔톤 재킷 그림까지도 신선하다. 하덕규가 대구까지 내려가서 함춘호를 영입했지만 이 앨범이 시인과촌장으로 낸 유일한 결과물이었다... 더보기
서머 타임 “여름날에는 사는 일이 평온하지/ 물고기는 뛰어오르고, 목화는 잘 자랐다네/ 네 아빠는 부자고, 엄마는 미인이란다/ 그러니 쉬잇, 아가야 울지마라…/ 언젠가는 네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를 거야/ 아침이 올 때까지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거야/ 아빠와 엄마가 지켜줄 테니까.”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피츠제럴드의 듀엣곡으로 유명한 ‘서머 타임’은 이런 여름에 잘 어울린다.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연주로 시작하여 최고의 듀엣이 주고받는 화음은 푹푹 찌는 열대야를 잊게 만든다.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번스, 키스 재럿, 제니스 조플린 등 수많은 가수가 다시 불렀다. 원래 ‘서머 타임’은 조지 거슈윈의 오페라 (1935년 작)에 나오는 노래다. 극 중 어부 제이크의 아내 클라라가 아기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이다.. 더보기
엘비스 프레슬리 각진 구레나룻, 꽉 달라붙은 가죽바지, 능숙한 골반 흔들기로 상징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 영화로 부활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우리에게 비틀스나 마이클 잭슨처럼 친숙한 팝스타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1950년대 혜성처럼 나타나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지형도를 바꾼 로큰롤의 제왕이었다. 한때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춤’을 따라 했듯이 그의 ‘개다리춤’도 10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노장 대열에 선 가수 남진이 데뷔 무렵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하운드독’을 부르며 다리를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대여 변치 마오’를 부른 남진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오마주하면서 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하트 브레이크 호텔’이나 ‘하운드독’ ‘러브 미 텐더’ 등으로 단숨에 젊은 세대를 사로잡은 .. 더보기
귀신 소동 녹음실에서 귀신을 보면 ‘대박’이 난다? 100만장이 넘게 팔리는 골든디스크가 심심치 않게 나오던 1990년대 가요계에 그런 속설이 있었다. 대개 음반 녹음은 시간에 쫓겨 밤새우기 일쑤인데 스태프 중 누군가가 피곤함에 지쳐 ‘헛것’을 보는 것이다. 대박을 기대하는 심리 때문이었는지 당시엔 귀신 얘기가 흔했다. 떠들썩했던 사건 중 하나가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귀신’이었다. 1997년 이승환의 5집 ‘애원’(사진)의 뮤직비디오는 장혁과 김현주가 출연,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됐다. 완성된 뮤직비디오에서 지하철을 운전하는 기관사 옆에 흰옷을 입은 긴 머리 여성이 탑승한 장면이 포착됐다. 일부 연예매체가 그 장면까지 캡처하여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한 처녀 귀신설을 제기했다.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공세에 시달리던 이.. 더보기
삐삐밴드의 추억 MZ세대들에게는 그들도 꼰대일지 모른다. 그러나 199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삐삐밴드는 X세대를 대표하는 펑크록 밴드였다. “식사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괜찮으세요? 수고가 많아요/ 우리 강아지는 멍멍멍/ 옆집 강아지도 멍멍멍/ 안녕하세요? 오오 잘 가세요. 오오/ 좋은 꿈 꾸셔요. 좋은 아침이죠/ 내일 또 봅시다. 동방예의지국.” 이라는 제목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안녕하세요’의 노랫말은 파격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딸기가 좋아. 딸기가”라고 외치는 ‘딸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혁명’을 지지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룹 H2O 출신의 베이시스트 달파란과 기타리스트 박현준이 톡톡 튀는 보컬 이윤정을 영입해 결성한 혼성 3인조 그룹. 그들의 프로듀서는 원조 록그룹 사랑과평화.. 더보기
소방차 ‘소방차’는 한국형 아이돌 그룹의 효시였다. 1987년 KBS2 백댄서팀 ‘짝꿍’ 출신인 김태형·정원관·이상원(1988년 도건우로 교체)으로 결성, ‘그녀에게 전해주오’로 데뷔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장 차림에 반바지를 입은 파격적인 패션과 바가지 머리, 애크러배틱쇼를 연상케 하는 무대 퍼포먼스 등 이전엔 볼 수 없었던 댄스 그룹이었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던졌다가 다시 잡는 퍼포먼스만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데뷔 당시 일본그룹을 모방했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제작 스태프는 화려했다. 당대를 풍미하던 작곡가 김명곤, 이호준, 박청귀가 참여했고, 태진아·심신·전유나·구창모의 소속사인 한밭기획(대표 양승국)이 제작했다. 당시 양승국 회장은 대전 유성에서 나이트클럽까지 운영하면서 밤무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 더보기
송골매 배철수와 구창모가 다시 뭉쳐서 송골매의 깃발을 걸고 추석 무렵 공연을 갖기로 했다. 올드팬들에게는 반가운 뉴스지만 젊은 세대들은 큰 감흥이 없을 것이다. 배철수는 라디오 DJ로 친숙하지만 구창모는 낯선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38년 전 이들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디스코풍의 펑크록으로 1981년 발표한 히트곡이었다. 리드보컬이었던 구창모가 작사, 작곡했다.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리듬과 멜로디로 그해 연말 각종 가요상을 휩쓸었다. 송골매는 배철수가 중심이었던 항공대학교 스쿨밴드 활주로가 모태였다. ‘.. 더보기
백만송이 장미 봄꽃이 지천일 때는 꽃의 소중함을 모른다. 꽃들이 지쳐 시들었을 때 장미는 핀다. 그래서인지 유월의 장미는 강렬하면서도 도도하다. 그런 장미가 지천으로 등장하는 노래가 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심수봉이 ‘백만송이 장미’로 번안하여 부른 노래로 러시아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1982년 발표했다.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조지아의 천재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출신 여배우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