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조덕배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옛날이 그리워진다. 특히 송년모임으로 분주해야 할 연말이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따지고 보면 사랑도 첫사랑이나 옛사랑이 훨씬 더 선명하고 애틋하다. 아이유의 리메이크곡을 듣다가 원곡자인 조덕배를 소환하는 건 그런 기분이 반영된 결과다. ‘쓸쓸하던 그 골목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지금도/ 난 기억합니다/ 사랑한단 말 못하고/ 애태우던 그날들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철없었던 지난날의/ 아름답던 그 밤들을/ 아직도 난 사랑합니다.’ ‘나의 옛날이야기’가 처음 발표된 건 1978년이었다. 싱어송라이터인 조덕배가 선배인 함중아에게 편곡을 부탁하여 발표했지만 뭔가 애틋함이 부족했다. 1985년 정식으로 1집 앨범을 냈을 때 팬들은 비로소 이 노래를 알아봤다. 조덕배는.. 더보기
빌리 홀리데이 삶 자체가 시련의 연속이었던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갖은 탄압 속에서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던 세월이 노래에 녹아 있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리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따뜻한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들이 매달린 채 흔들리네/ 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 홀리데이는 인종 차별이 극에 달했던 1939년 나무에 매달린 채 처형된 흑인들을 묘사한 ‘스트레인지 프루트’를 발표하여 연방수사국(FBI)의 집중 표적이 됐다. 미국 정부는 흑인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사실 홀리데이의 삶은 미국의 인종 탄압사와 맥을 같이한다. 그는 사창가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백인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오히려 2년간 감화원 생활을 해.. 더보기
이동원 ‘이별노래’ 1984년 봄 무명가수 이동원이 시인 정호승이 일하는 잡지사로 찾아왔다. 정 시인이 모 회사 사보에 발표한 시 ‘이별 노래’를 읽고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허락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가을쯤 워크맨에 노래를 녹음해서 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시가 가진 원형의 리듬을 그대로 살리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사색적인 음색을 담은 울림이 큰 노래가 탄생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그 당시 이동원은 서른셋이었고, 정호승은 한 살 위였다.. 더보기
더불어 행복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완화되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문득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의 동명 주제곡이 떠오른다. ‘해피 투게더’는 미국의 록밴드 ‘터틀스’가 발표(1967년)하여 빌보드 차트에서 비틀스의 노래를 밀어낸 곡으로도 유명하다. 영화에서는 대니 청이 편곡하여 불렀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언제나 행복하다는 노랫말처럼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팝 명곡의 반열에 올라 있고, 왕자웨이의 영화가 재조명되면서 MZ세대에게도 인기가 높다. 사실 등 대표작들이 즐비한 왕자웨이 감독은 영화 음악의 귀재다. 의 주제가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부른 마마스 & 파파스는 그 인기로 내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의 주인공 양.. 더보기
눈물의 결혼식 백신접종률이 높아지면서 많은 하객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식을 치를 수 있게 됐다. 신랑과 신부가 하객 없는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미뤄야 했던 안쓰러웠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노래 속에서 결혼식은 마냥 기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소/ 춤추는 웨딩드레스는 더욱 아름다웠소/ 우리가 울었던 지난날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가 미워한 지난날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한상일이 부른 ‘웨딩드레스’(이희우 작사, 정풍송 작곡)는 정인엽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1970)의 주제가였다. 영화를 토대로 쓰인 노랫말은 뭔가 사연 있는 결혼임을 암시한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한상일은 매력적인 중저음과 수려한 외모로 사랑받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연예계를 떠나야 .. 더보기
김현식과 유재하 한 시절, 11월1일이 되면 대중음악계가 긴장했다. 1987년 스물다섯의 젊은 싱어송라이터 유재하가 죽고, 3년 뒤에 가객 김현식이 유명을 달리한 날이었다. 꽤 오랫동안 11월 괴담이 떠돌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비슷한 시기에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가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가리워진 길’은 유재하가 만들고 불렀지만 김현식도 부른 노래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늦가을 안개 속으로 떠난 유재하에게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였으리라. 그 길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노래했지만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더보기
별이 진다네 별은 참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땅 위의 인간들은 끊임없이 별을 노래해왔다. 1989년 발표된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도 그중 하나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오늘도 별이 진다네/ 아름다운 나의 별 하나/ 별이 지면 하늘도 슬퍼/ 이렇게 비가 내리는 거야.” 이들의 데뷔앨범 ‘자연으로 돌아가라’에 수록된 타이틀곡이다. 여행스케치는 원래 명지대에서 개최된 백마가요제 출전자 9명으로 결성됐다. 당시 서울음반 관계자가 “여행을 떠나 자연의 소리를 담아 음반을 만들자”라고 제안하여 귀뚜라미 소리, 여울 물소리, 바람 소리 등과 어우러진 어쿠스틱한 노래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룹 이름도 여행스케치가 됐다.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조병.. 더보기
가을 아침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음…” ‘가을 아침’을 듣다 보면 양희은과 아이유가 동시에 떠오른다. 창법은 다르지만, 노래의 감칠맛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아침 이슬’ 20주년 기념 음반 ‘양희은 1991’에 담긴 이 노래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양희은의 역작이었다. 서른에 자궁암, 서른여덟에 자궁근종을 겪고 뒤늦게 결혼한 양희은이 40세에 내놨다. 당시 뉴욕에 머무르던 양희은은 빈 국립음대에서 기타를 공부하던 이병.. 더보기
가을이다 이런 가을이면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이연실의 가을 노래가 그것이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선 타향에/ 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서러워/ 그리워라 나 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 형제/ 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 고향/ 명경같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에/ 등불가에 젖는 달빛 고즈넉이 내릴 제/ 줄지어 가는 기러기 떼야…” 이연실은 더 이상 가을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없다는 듯 처연하게 이 노래를 부른다. 깊은 가을밤에 듣고 있으면 금세 가을이 목까지 차오른다. 사실 이 노래는 기왕에 있는 동요 두 곡을 이어 불렀다. 존 오드웨이의 ‘여수’와 ‘스와니강’, ‘올드 블랙 조’ 등으로 유명한 포스터의 ‘기러기’가 원곡이다. 원래 동요로 더 유명하지만 이연실은 새로운 편곡으로 마치 한 곡의 노래처럼 소화하여 부.. 더보기
순자의 가을 가을은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참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잔인한 계절일 수도 있다. “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 나 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창밖엔 눈물짓는/ 나를 닮은 단풍잎 하나/ 아, 가을은 소리 없이 본체만체/ 흘러만 가는데….” 1978년 대학가요제 출연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던 가수 심수봉은 이듬해 KBS 라디오 드라마 의 동명 주제가를 만들어 불렀다. 10·26 때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시련을 겪다가 1980년 박호태 감독 영화 의 주제가를 부르면서 재기했다. ‘순자의 가을’은 이 영화의 주제가로도 쓰이고 그녀의 3집 앨범에도 수록됐다. 그러나 총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이 하필.. 더보기
‘솔개’의 원곡자 윤명환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소리 없이 날아가는 하늘 속에/ 마음은 가득 차고/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다소 이색적인 노랫말로 눈길을 끌었던 ‘솔개’는 이태원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작사·작곡자인 윤명환도 이 노래를 불렀다. 1983년 자신의 앨범을 내면서 이 노래를 수록했다. 1982년 이태원은 윤명환이 만든 노래로 각종 방송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금지곡으로 묶였다. 원곡에서는 “권태 속에 내뱉어진 소음으로 주위는 가득 차고” “종잡을 수 없는 얘기 속에” “나를 비웃고” 등으로 돼 있었다. 이를 순화하라는 압력을 받고 가사를 고친 것이다. 윤명환은 가사를 고친 것.. 더보기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이성복 ‘남해 금산’) 남해 금산은 경남 남해군 금산(錦山)을 지칭하는 지명이다.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광이 시적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지난 8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듀오 그룹 둘다섯의 오세복은 히트곡 ‘밤배’를 이곳 보리암에서 만들었다.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 봐 한없이 흘러가네/ 밤하늘 잔별들이 아롱져 비칠 때면/ 작은 노를 저어 저어 은하수 건너가네/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