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김현식과 유재하

한 시절, 11월1일이 되면 대중음악계가 긴장했다. 1987년 스물다섯의 젊은 싱어송라이터 유재하가 죽고, 3년 뒤에 가객 김현식이 유명을 달리한 날이었다. 꽤 오랫동안 11월 괴담이 떠돌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비슷한 시기에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가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가리워진 길’은 유재하가 만들고 불렀지만 김현식도 부른 노래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늦가을 안개 속으로 떠난 유재하에게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였으리라. 그 길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노래했지만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로 먼저 떠났다. 그가 ‘그대여 힘이 돼주오, 그대여 길을 터주오’라고 속삭일 때면 가슴이 무너진다.

 

그런데 이 노래를 먼저 부른 건 김현식이었다. 유재하가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로 활동했던 인연으로 이 노래를 먼저 불렀다. 기록에 의하면 유재하는 한양대 작곡과에 다니면서 클래식보다는 가요와 팝에 관심이 많은 아웃사이더였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멤버들과 자주 어울리던 유재하가 김현식과 조우했고, 김현식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것이다. 김현식이 부른 ‘가리워진 길’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유재하의 음악성에 김현식의 개성이 어우러졌다.

 

당시 멤버 중 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김현식은 연습실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난 유재하를 혼냈다고 한다. 음악과 사생활을 구분하라는 충고였다.

 

그러나 유재하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김현식은 3박4일간 통음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지금 유재하도 김현식도 없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가을을 적신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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