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노을 코로나19로 하늘길도 막히고, 사람 사이의 길도 막힌 요즘 그나마 위안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맑은 하늘이다. 그중에서도 해가 지는 저녁,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은 우리를 황홀하게 만든다. 매일 모습을 달리하는 황혼은 코로나19 시대의 슬픈 선물 같다. “서쪽 하늘로 노을은 지고/ 이젠 슬픔이 돼버린 그대를/ 다시 부를 수 없을 것 같아/ 또 한 번 불러 보네/ 소리쳐 불러도 늘 허공에/ 부서져 돌아오는 너의 이름/ 이젠 더 견딜 힘조차 없게/ 날 버려두고 가지.” 이승철이 영화 의 주제곡으로 처음 부른 뒤 Mnet의 에서 울랄라세션이 불러 유명해진 ‘서쪽 하늘’은 노을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이 노래와 연관됐던 연예인들 중에서 세상을 달리한 사람이 많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장진영과 김주혁이 차례로.. 더보기
여름 휴가지의 으뜸은 섬여행이다. 제주도나 울릉도가 아니더라도 섬으로의 휴가는 늘 특별하다. 섬이 주는 거리감과 낭만 때문이 아닐까? 노래 속에도 섬은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이경재가 작사하고 박춘석이 작곡하여 KBS 라디오 연속극 의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크게 히트했다. 이미자와 박춘석은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등 발표하면서 최고의 콤비가 됐다. 1967년에는 김기덕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었다. 오영일과 안은숙, 문희가 주연을 맡았고, 인천 앞바다 옹진군의 대이작도에서 촬영했다. .. 더보기
독도는 우리 땅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87K/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삼도 강수량은 천팔백/ 독도는 우리 땅” 국민애창곡인 ‘독도는 우리 땅’을 자주 들어왔다면 가사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2012년 원곡자인 박문영씨가 30년 만에 가사 내용을 현실에 맞게 수정했다. 이 노래가 탄생한 건 1982년 KBS 코미디 프로그램 의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 코너였다. 연출을 맡고 있던 김웅래 PD가 후배 박문영 PD한테 요청, 자료실에서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속성으로 만든 노래였다. 이 코너의 출연자는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 정광태였다. 노래 가사를 차트에 써놓고.. 더보기
여름비 뙤약볕을 식히는 여름비는 황홀하다. 굵은 빗줄기가 순식간에 대지를 적시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듣는 것만으로도 속 시원한 소나기 같은 노래가 있을까? 미국 록그룹 C.C.R이 부른 ‘이런 비를 본 적 있나요’(Have you ever seen the rain)가 그런 노래다. 폭풍 전의 고요가 끝나면 곧 비가 내릴 거라는 노랫말처럼 격정적인 리듬과 멜로디로 휘몰아친다. 그들이 발표했던 또 다른 노래 ‘누가 이 비를 멈추랴’(Who’ll Stop the Rain)도 함께 떠오른다. 비로 상징되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노래다. 1990년대 후반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진 밴드의 내한 공연 때 ‘슈지 큐’를 들으면서 신나게 몸을 흔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원년 멤버들은 아니었지만, 청바지 입은 초로의 로커.. 더보기
김성호 “내 단 하나의 소원/ 저녁녘 고요 속 바닷가로/ 돌아가고파 숲 가까이서/ 조용히 잠들고 싶어/ 끝없는 바다 위엔/ 맑디맑은 하늘/ 난 화려한 깃발도 소용없어/ 훌륭한 집도 필요 없어/ 다만 젊은 나뭇가지로/ 내 잠자릴 엮어다오/ 내 베개 밑에서/ 슬퍼할 자는 아무도 없고/ 마른 잎 위를 스쳐가는 가을바람 소리뿐.” 1978년 제1회 TBC 해변가요제가 충남 태안의 연포해수욕장에서 열렸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노래 중에서 중앙대 스쿨밴드인 블루드래곤의 ‘내 단 하나의 소원’이 있었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말기여서 방송도 자체검열이 심했던 시절이다. 일부 심사위원이 “깃발도 소용없어” 운운하는 가사가 불순하다고 지적했지만, 무사히 살아남아 장려상을 받았다. 곡의 완성도가 뛰어났지만 너무 긴장해서인지 박.. 더보기
삼촌들의 의리, 역주행 도로에서 역주행하면 사고를 부른다. 그러나 유일하게 즐거운 예도 있다. 바로 음원차트에서의 역주행이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군대를 다녀온 ‘삼촌’들의 힘으로 역주행을 하더니 라붐의 ‘상상 더하기’가 그 행렬에 가담했다. 브레이브걸스나 라붐은 군부대 위문 공연을 열심히 다녔던 걸그룹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라붐의 한 관계자는 “지난 수년 동안 휴전선 155마일에 있는 웬만한 GOP는 거의 모두 가봤다”고 했다. 데뷔 8년 차를 맞는 이들이 그곳에서 공연을 통해 만난 장병들의 숫자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변변한 무대조차 없는 연병장에서 이들이 열과 성을 다해 노래하면 장병들은 미친 듯이 화답하곤 했다. 그 열광의 현장은 온라인에 떠도는 많은 영상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 나와 어디든 가자.. 더보기
수난 당하는 죽창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거론한 죽창가는 민주화 항쟁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노래다. 2019년 조국 전 민정수석은 “SBS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보는데, 한참 잊고 있던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면서 그의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거론했다. 윤 전 검찰총장이 “죽창가를 부르다 한·일관계가 망가졌다”고 말한 것은 사실상 조국 전 수석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 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노랫말은 고 김남주의 시 ‘노래’가 원전이다. 1989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더보기
“친구여 우리는 술 처먹다 늙었다/ 자다가 깨서 찬물 마시고 한 번 크게 웃은 이 밤/ 산 아래 개구리들은 별빛으로 목구멍을 헹군다/ 친구여, 우리의 술은 너무 맑은 누군가의 목숨이었다….” -김홍성 ‘산에서’ 중에서 술꾼에게 술은 필요악이다. 그러다 보니 대놓고 술을 예찬한 노래는 많지 않다. 1970년대 초반에 콧수염을 기르고, 가죽 재킷 차림에 오토바이를 타던 이장희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한잔의 추억’을 노래했다. “늦은 밤 쓸쓸히 창가에 앉아/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면은/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은/ 반쯤 찬 술잔 위에 어리는 얼굴”. 이장희는 “마시자 한잔의 추억/ 마시자 한잔의 술”이라고 노래했지만, 음주를 권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고, 대마초 파동에 연.. 더보기
비도 오고 그래서 장마철이 시작되면 오감이 먼저 반응한다. 요란한 빗소리, 퀴퀴한 냄새, 끈적한 느낌, 함께 우산을 썼던 누군가의 체취까지.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 거지/ 별 의미 없지/ 우산 속에 숨어서/ 네 집을 지나쳐/ 그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파서/ 떨어지는 빗물과/ 시계 초침 소리가/ 방 안 가득 채우면/ 그때로 난 돌아가/ 차라리 난 이 비가/ 그치지 않았음 해/ 매일 기억 속에 살 수 있게.” 헤이즈(사진)의 중독성 있는 목소리와 빗소리가 인상적인 노래 ‘비도 오고 그래서’는 장마철이면 역주행하는 노래다. 장범준의 ‘벚꽃 엔딩’이 벚꽃 연금을 받게 한다면, ‘비도 오고…’는 장마 연금을 선물한다. 2017년 6월 헤이즈가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 같은 앨범에 수록.. 더보기
사계절의 가수, 이문세 계절이 바뀔 때, 해가 뜨고 질 때 생각나는 노래들이 있다. 세대 차이는 있겠지만 이문세의 노래는 봄부터 겨울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가히 ‘사계절의 가수’라 할 만하다. “눈 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 거리….’ 노래 한 곡으로 봄과 겨울을 불러낸다. 하여, 서울 정동길에 가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작곡가인 이영훈의 노래비가 그곳에 있는 까닭이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는 또 어떤가. 이 노래 역시 봄과 가을을 지날 때마다 즐겨 부르는 노래다. 이문세의 거의 모든 노래들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영훈의 작품이다. 그는 피아노 한 대가 달랑.. 더보기
작은 연못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들어 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 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김민기가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쓴 ‘작은 연못’은 오랜 시간 암구호처럼 불린 금지곡이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가수가 된 스물한 살의 양희은이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불렀지만 노래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사뭇 웅숭깊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로 끝나는 이 노래는 대중음.. 더보기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떠들썩하게 등장과 퇴장을 한 가수는 누굴까? 많은 전문가는 주저 없이 김추자를 꼽는다. 그를 얘기할 때면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표현이 뒤따른다. 청자는 1969년 전매청(현 KT&G)이 출시한 한국 최초의 고급 담배였다. 출시 당시 가격은 100원, 다른 담배보다 40~50원 비쌌다. 청자에 비견된 김추자도 같은 해 데뷔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신중현이 만든 야심작이었던 김추자는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섹시한 춤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도발적인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몸매, 허스키한 음색으로 남성 팬들의 우상이 됐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데뷔 앨범 수록곡인 ‘늦..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