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연둣빛 버들잎

버드나무. 2021. 김지연

운무 속에서 비단결같이 가는 비가 내린다. 춘분을 맞아 여기저기 새순이 돋는데, 연못가 버들잎이 비에 젖어 연초록 비단처럼 나부낀다.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은 빛을 더한다. 버드나무는 제 색을 갖기 전인 이 시기가 제일 예쁘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풀숲 저편에 대여섯 그루 버드나무가 손짓을 했다. 곁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직 뱀은 안 나오겠지 하며 발길을 조심스럽게 더듬거리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왜가리 한 마리가 버드나무 사이에서 푸드덕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 아깝다. 저것을 찍었어야 하는데!’ 연두색 버드나무 위로 나는 새를 상상했다. 버드나무 쪽으로 다가가는데 왜가리는 멀리 날아가지 않고 가까운 저수지 위를 선회하면서 아-악 소리를 질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왜가리가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니. 나는 비로소 새를 주시했다. 왜가리도 나를 바라보는 것이 분명했다. 다시 한번 아-악-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를 향해 돌진할 기세다. 맹수가 따로 없었다. 왈칵 무서움이 들어 비옷 후드를 머리에 쓰고 서둘러서 빠져나왔다. 아마도 버드나무 군락지에서 새끼를 기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토록 사나워질 수가 있겠는가.

 

정자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는 그 사연을 모르는 듯했다. “그쪽에 쑥이 있습디여?”

 

아마 그럴 것이라고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그렇지만 그곳에 가면 안 될 것 같다고 대답하려는데 할머니는 이미 그럴 생각은 없는 듯 자리를 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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