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이 때로는 긴 호소문보다 더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특히 가족이나 사랑처럼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에서는 더욱 그렇다.
엄상빈 작가는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첫 목욕, 주민등록증 발급, 첫 면도, 군 입대와 제대 모습 등의 성장 과정을 담은 사진집을 발표했다. 가족의 일상을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업은 사진가 엄상빈의 성격과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작가들은 대체로 가정 밖을 향해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가족에 대하여 소홀할 때가 많다. 더욱이 전업 작가들은 생계수단이 막막하니 가족을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삶의 경계에서 우물쭈물하다가 한 생애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하면서 일찍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해왔던 엄상빈 선생은 이런 점에서 소위 ‘밥값’은 한 셈이다. 하지만 자기 작업에만 몰두하다보면 생길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외로움을 딛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런 그가 또 다른 한편에서 자녀들의 성장 과정을 찍어왔다니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가족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리 오랜 시간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겠는가.
‘초파일날, 절에 다녀오다가 어린 아들이 아기 고양이를 안아볼 기회가 생겼다. 이맘때는 늘 앞니 빠진 모습이다. 간당간당 겨우 붙어 있는 젖니를 집에서 뽑아주기 시작했다’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에 있는 그대로 접근하는 작가의 사진이 살갑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