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입춘대길

제주 관덕정 마당 입춘굿 놀이(일제강점기), 11.9×16.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새해가 되면, 한국인에게는 목표를 세우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공식적인’ 세 번의 기회가 온다. 한 번은 전 세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1월1일 새벽. 보신각 종이 33번 울려 퍼지는 동안, 각자의 바람을 새기고 실천을 다짐한다. 그러나 곧 마음은 느슨해지고, 언제 그런 결심을 했나 싶게 과거의 나로 돌아간다.

 

나 역시, 점점 게을러지고 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제때 식사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은 보름을 채 못 가고 다시 올빼미 생활이 시작되던 차, 지인들이 함께하는 단톡방에 입춘을 알리는 소식이 올라왔다. 2월3일 23시59분48초가 올해의 입춘이라며, 정성스럽게 써넣은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올려놓은 지인은 그 시간에 맞춰 기원하고 입춘첩을 붙이자고 했다. 소원성취를 향한 두 번째 기회다. 무사태평과 풍농을 기원하고 봄을 환영하던 조상들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마음으로, 나는 지시받은 시간을 엄수하며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입춘첩을 현관문에 붙였다. 개인의 다짐도 했지만, 전염병이 종식되기를 꽤 간절히 빌었다.

 

탐라국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다 일제강점기에 ‘미신타파’라고 중단된 뒤, 1998년 복원해 전승돼온 제주의 유명한 입춘굿이 올해는 ‘비대면’으로 열렸다. 사람들은 제주 관덕정에 모이는 대신, 모니터 앞에 앉아 생중계되는 종합축제의 장, 입춘굿 현장을 바라본다. 세상이 안녕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걸 확인해주는 전염병의 시간을 지나며, 내 소원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입춘을 무덤덤하게 보내 아쉽다면, 입춘 이후에도 영 게으른 습관을 뜯어고치지 못했다면, 남은 한 번의 기회인 설날을 ‘결심의 날’로 잘 살려볼 일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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