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플랫]‘K푸드’ 만화가 드러낸 ‘한국’이라는 가부장제 사회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의 작가 김정연의 신작 출판 만화 <이세린 가이드>는 예술적 가상이 어떻게 진실을 드러내느냐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오직 가상을 통해서만 실재 안에 은폐돼 있는 진실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목부터 미셰린(혹은 미슐랭) 가이드에 대한 모방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이세린은 음식 모형 제작자다. 에피소드마다 그는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음식의 모형을 제작하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해 들려준다.

배추김치 모형을 만들면서 할머니 이하 집안 여성들이 총동원되는 김장철의 불평등한 풍경을 떠올리는 것처럼 비교적 유사한 기억으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라면 모형을 만들다가 먹방 유튜버가 매운 라면을 고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고 예능에서의 음식 복불복 장면을 상상하다 복불복으로 일진에게 걸려 돈을 뺏긴 10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을 과거로 여행하게 해주는 마들렌과 홍차의 역할을 여기선 음식 모형이 해주는 셈이다. 여기에 이미 일종의 패러디가 있다. 음식의 익숙한 맛과 향을 통해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는 문화적 클리셰 대신 맛도 향도 없는 음식 모형을 통해 파편적인 기억과 감정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짜’ 음식, ‘진짜’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가령 비빔밥 모형을 만들던 세린은 어머니가 만든 산더미 같던 명절 음식 중 맛있는 건 모두 사라지거나 친척들에게 들려 보내 나물만 잔뜩 남아 비빔밥을 만들던 기억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보면 여자 주인공과 친구들이 모여 앉아 양푼 비빔밥을 억척스럽게 먹는 장면이 클리셰로 등장하고는 했는데, 청소년기엔 양푼 비빔밥의 그 형식 없음과 털털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베를린에 거주 중인 현재 “낯선 곳에서 제가 누구인지를 소개하기 위해 제가 잘 먹지도, 잘 하지도 않는 음식을 소개하는 일이 반복”되고 “비빔밥을 소개하고 헤어지고, 비빔밥을 소개하고 헤어지다 보면 귀가해 양말을 벗을 때쯤에는 나는 만화가 김정연일까, 아니면 걸어 다니는 bibimbop일까 혼란이 오곤 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은 나라는 사람의 어떤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몰두”가 되었다며 작품 기획 과정을 이야기한다.

MBC <무한도전> 팀이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비빔밥에 대한 광고를 게재하고 그것에 국민들이 감탄하고 감동하던 K푸드에 대한 거대한 자부심 안에서 작가의 감정은 K답지 못한 것이 된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공유되는 공통의 기억에서 김정연 혹은 이세린 같은 이들의 기억은 소외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세린 가이드>. 코난북스 제공

전작 <혼자를 기르는 법> 연재 당시 여성 독자들에게 엄청난 공감을 얻었던 골목길에서의 성추행 위협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이시다는 ‘저는 그 골목에서 뭔가를 단단히 배운 느낌이었지만 그 새끼들은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겠죠’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가해자들의 양심 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않은) 남성 가해자들의 세계에서 가해는 없는 일이 되고, 오직 피해자의 기억만이 개별적이고 일회적인 경험으로서 세계 안에 기입되지 못하고 겉돈다.

음식 모형을 만들며 K푸드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정서와는 거리가 먼 세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세린 가이드>는 정사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미시사라 할 만하다.

이러한 허구성을 폭로하며 전작처럼 한국이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부조리함을 비판하는 건 필연적이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게 되자 더는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된 경험에 대해 ‘남자들의 차례가 되면 세상은 바뀐다’고 독백할 때, 작가의 언어는 조금의 낭비도 없어 서늘하다. 남아선호가 극에 달한 할머니가 증손자를 보게 되자 아버지의 기술을 활용해 증손자의 고추 모형을 만드는 기이하지만 웃기 어려운 에피소드나, 어머니의 동네 친구인 아주머니가 세린을 잠재적 며느리로 두고 잘해준 이야기 등 여성이기에 경험하지만, 여성의 것이기에 제대로 기록되고 공유되지 못한 부조리한 경험들이 챕터마다 다양하게 기록된다.

이세린의 독백과 회고를 통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동시대 여성이 거쳐 온 경험을 신랄하게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세린 가이드>에서 음식 모형과 그 제작은 주인공의 비판적 회고를 위한 맥거핀은 아니다. 음식 모형은 음식의 모방이자 가상이지만 이런 가상은 실제 대상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세린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부패하지 않도록 한순간을 정지시킨다는 점은 나나 박제사나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말한다.

여기서 음식 모형은 음식이 상한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가상이지만, 또한 이러한 가상의 도움 없이는 음식의 먹음직스러운 모습이란 다분히 연출된 것이자 찰나적인 것이며 음식은 결국 부패하게 된다는 것을 폭로하는 역할 역시 한다. 부패한 음식을 직접 보고 냄새 맡는 것은 고역이지만, 음식 모형은 너무나 먹음직스럽지만 먹을 수 없는 가상으로서 부패에 대한 진실을 역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예술의 역할, 작품의 역할과 동일하다. 예술은 가상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우리가 직접 대면하기 어려운 진실을 추체험하게 해준다.

세린은 자신과 꽤 친했던 둘째 오빠가 포트폴리오를 위해 자기 얼굴을 본떠 두들겨 맞아 죽은 여성 시체 모형을 만든 것을 알고 가족의 연을 끊는다. 심지어 가짜니까 괜찮다던 어머니조차 그 모형을 실제로 보고 더는 화해를 종용하지 않는다. 그 끔찍함에 대한 짧은 언급이 있지만, 심리적 충격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실제 구타당한 여성의 모습이 그 참혹함 때문에 가해자 개인에 대한 분노만을 자극한다면, 구타당해 죽은 여성의 모델을 당사자 동의 없이 만든 둘째 오빠의 무신경함은 그 참혹함을 가능하게 한 남성들의 구조적 무관심까지 드러낸다. 불편한 진실은 너무 불편해서 가상을 거치지 않고서는 대면하기 어렵다.

김정연 작가의 전작 <혼자를 기르는 법> . 다음웹툰 캡처

 

그래서 <이세린 가이드>는 ‘무엇인가를 복사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세린의 입과 업을 통해 만화로 세상을 재현하는 일에 대한 김정연 작가의 고민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가 전작에서 혼자 살거나 혼자 성장하는 게 아니라, 혼자를 기르는 것으로서 3인칭적인 거리를 두어야 밝힐 수 있는 진실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이번엔 가상이기에 말할 수 있는 진실이 있고 반대로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어떻게 가상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린 세린이 예절 학교에서 밥상 예절을 배울 때 사용된 밥상이 음식 모형으로 이뤄진 것처럼, 뭔가를 모방하는 세린과 세린 가족의 일을 ‘가짜’를 만드는 걸로 비하하고 최종적으로 어머니의 짝퉁 가방을 비웃는 친척 앞에서 세린 가족 모두가 거짓 웃음을 지었던 것처럼, 현실의 생활세계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나 진정성 같은 것들 중 일부는 허구적이다.

음식 모형이 음식보다 음식에 대한 진실을 더 잘 드러내고, 현실에서 유의미해 보이는 게 사실은 의미 없는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듯, 세계를 모방하는 가상으로서의 만화 역시 ‘진짜’로 받아들여지던 것들의 허상을 폭로하고 해체하며 세상의 폭력적 진실을 비교적 안전하게 매개할 수 있다.

작가 특유의 탁월한 위트는 진실을 대면하기 위한 완충재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가상의 위트는 현실의 웃음기 없는 폭력을 역으로 폭로한다. 전작에서부터 이를 실증해온 작가는 <이세린 가이드>를 통해 일종의 자체적 작품론까지 써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다른 가상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평가할 신뢰할 만한 ‘가이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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