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플랫]“왜 ‘엄마’는 남겨진 사람이어야 하는가. 나도 떠나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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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설날. 제주에서 편지를 쓴다. 결혼 전에는 엄마·아빠의 딸로서, 결혼 후에는 너희들의 엄마로서 명절은 늘 ‘가족과 함께’ 보냈지. 이번엔 너희들과 떨어져 타지에서 새해를 맞는구나. 오랜 바람이었다. 올해로 둘째아이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해 성인이 됐다. 두 아이를 업고 물살이 센 큰 강을 거슬러 건넌 기분이야. 내 나이 오십, 육아기간 25년. 생애 절반을 엄마로 살았더구나. 한번쯤 매듭이 필요했다. ‘나홀로 명절’은 그 첫발을 떼보는 연습이다.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스물둘에 결혼을 하고, 스물여섯과 서른둘에 너희를 낳았다. 사람들이 묻곤 했지. 아니 왜 그리 결혼을 빨리 하셨어요? 어머, 애를 일찍 낳으셨네요? 마땅한 답이 없었다. 사촌언니도 하고 옆집 여자도 하고 친구도 하고 드라마 주인공도 했고, 결혼과 출산이 삶의 고정값이었다. 살기 위해 가족을 꾸렸다기보다 가족을 이뤄야 살아지는 줄 알았던 것 같아.

내 나이 서른 중반이 되고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다채로운 사람 풍경을 보았지. 독일로 출장을 가는 회사원들, 중국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 대륙 한두 개는 넘나들며 살더구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고투하거나, 낡은 자취방에 곰팡이가 슬어 피부염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거나 찾지 못해 방황했지. 어쨌거나 자기에게 집중하며 혈혈단신으로 일궈가는 청춘의 서사는 불안했으나 매혹적이었다.

문득 내 젊은 시절이 낯설었다. 나는 왜 열차에서 열차로 환승하듯 가족을 떠나 바로 가족으로 옮겨 탔을까.

‘가족’이 내 삶의 화두가 됐다. 마치 공기처럼 내 삶에서 한번도 분리된 적 없는 그것. ‘보호’보단 ‘제약’이 연상되는 단어. 그래서 <반사회적 가족>이라는 책은 제목부터 끌렸다. 모두가 느끼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금기가 들어있을 것 같았지. 정말 그랬다. 저자는 가족의 폐단을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부와 빈곤을 세습하는 것. 둘째, 사생활권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개성과 인권을 억누르고 갈등을 은폐하는 것. 셋째, 모성 역할과 가사노동에 여성을 속박하는 것.

반사회적 가족
미셀 바렛·메리 맥킨토시 지음
김혜경·배은경 옮김
나름북스 | 350쪽 | 1만5000원

 

난 한줄 한줄 밑줄을 그었다. 흙수저 금수저란 말도 있듯이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된다. “계급 배치의 강력한 기관”으로 가족이 기능하지. 가정폭력은 뉴스의 단골 소재다. 부모가 자식을 독립된 인격으로 대하기보다 통제하고 간섭한다.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밖에 없다고들 말하지만, 가족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가족이 ‘여성을 모성 역할과 가사노동에 속박한다’는 내용에 난 공감했다. 너희들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과한 축복이자 더없는 행복이었지만 그 일상을 떠받치는 노동은 혹독했다. 육아는 퇴근도 없고 퇴직도 없다고 하는데, 그 “피할 길 없음”이 엄마 일과 집안일의 가장 억압적인 점이다. 어떤 좋은 직업도 자기 의지로 쉬거나 그만둘 수 없다면 끔찍하겠지.

이런 내 처지와 달리 너희들에겐 엄마의 손길이 늘 부족했을 것 같아. 내가 뒷심이 달려서 갈수록 양육에 전념하지 못했지만 어떤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엄마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게 되니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강의를 하는 순간순간에도 불쑥 엄마 자아가 튀어나와 당황하곤 했다.

이 책의 저자도 말한다. “엄마가 되는 것과 자기가 바라는 어떤 사람이 되는 것 사이에는 자주 긴장이 발생해서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누리기 어렵다”고.

내가 ‘자취’를 결심한 이유다. 실은 너희들이 자취 이야기를 할 때 힌트를 얻었다. 흔히 자녀들이 다 커서 독립하면 중년 여성은 집에 남아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다고들 한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엄마’는 꼭 남겨진 사람이어야 하는가? 나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들었고, 떠나보고 싶었다. 내가 세운 자취의 목표는 두 가지다. 인간에게 마땅히 필요한 ‘고요한 단독자’의 시간을 늦게라도 살아보는 것. 그리고 <반사회적 가족>을 교본 삼아 부모와 자녀로 된 중산층 가족을 가족 외부에서 비판적으로 사유해볼 기회를 갖는 것.

늘 현실은 이론보다 앞선다. 혈연 중심의 가족에 대한 신비화와 과대평가가 사라지고 있으며 이미 “독신, 생활공동체, 동성가구 등 다양한 가구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굳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관계를 만들고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더 기발하고 긴밀해질 것이다. 나는 내 가족도 못 챙기는 사람이 되는 것만큼 내 가족만 아는 사람이 되는 것도 두렵다. 우선 가족 바깥을 향해 몸을 틀어본다. 성인이 된 너희들과 맺어갈 새로운 관계를 기대한다.


은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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