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플랫]게임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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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온라인 게임에서 여성 이용자를 성희롱한 게임 이용자에게 성폭력특별법 제13조에 근거하여 벌금이 선고됐다. 언론들은 주로 벌금액이나 처벌 자체에 주목했지만, 이 판결은 여성들의 게임 진입장벽으로 지적되어 온 성희롱 문제를 ‘성희롱’ 그 자체로 처벌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에는 온라인 게임 채팅상의 성희롱을 성폭력특별법이 아닌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다루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 여성 이용자들은 문자 채팅이나 보이스 채팅을 통해 성적 욕설이나 성차별에 근거한 모욕을 당했을 때 이를 모욕죄로 신고할 수 있는 팁을 공유해오곤 했다. 상대방이 피해자를 특정하는 표현을 써야 한다, 공연성이 성립하려면 친구나 주변 사람이 이를 목격해야 한다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번 판결로 게임 내에서 발생한 성희롱 피해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절차가 쉬워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통신매체이용음란’이라는 법 조항명과 ‘성적 수치심’ 개념에 따라 이뤄지는 제재이기에 성차별적 구조 문제가 다루어지기 어렵다는 한계 역시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내 성희롱 문제를 신고할 때 모욕죄로 신고해야 쉽게 처리된다는 사법기관의 안내를 받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생각하면 이는 분명한 진전이다.

 

게임 공간 내 성차별적 문화에 대한 여성 게이머들의 문제 제기는 계속되어 왔다. 이는 모욕과 욕설의 문제를 넘어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0게임이용자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근거한 모욕을 당하거나 오프라인 만남을 요구받는 일이 남성에 비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게임 내 성차별 문화가 여성과 청소년을 유인·약취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사회의 성차별 구조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연관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 내의 성희롱 문제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화가 온라인 세계의 익명성이나 남성 중심적 게임 문화와 결합해 나타난 것이다. 한편 게임 내 성차별 구조에는 게임 제작과 산업의 차원에서 여성 노동자가 일하기 어려운 환경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제작과정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는 남성 중심적 구조가 게임 콘텐츠, 그리고 게임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공동체 문화 속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게임 공간 내 성차별·성희롱에 대한 대응은 사이버 ‘예절’의 프레임으로 갇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2020년 한국 게임이용자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인신공격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경험하고 성차별 발언 피해 역시 9.3%에 이른다는 점을 밝히면서, 게임 업계의 금칙어 리스트 필요성을 물었을 때 이용자의 찬성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의 게임 리터러시나 디지털 시민성 교육이 사이버 예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금칙어 요구는 이러한 경향의 한 단면일 것이다. 금칙어나 고운 말에 대한 강조는 물론 필요하다. 문제는 단지 그것이 험한 말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게임 내의 성차별적·성희롱적 언어를 사이버 성폭력으로 개념화해왔다. 게임계 내 여성 이용자의 가시화 및 성차별 고발을 위해 결성된 페이머즈는 2016년부터 2020년 12월까지 활동하면서 게임 내 여성혐오 문화를 고발했다. 이들은 게임 내 성차별이 단지 모욕과 욕설로만 다뤄지는 문제를 지적했다. 게임은 별도의 가상세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현실세계의 규범을 반복한다. 현실세계의 성차별 구조는 게임 내에서 게임의 기술적 특성을 반영하여 더욱 과장된 방식으로 증폭된다. 게임 내 성희롱 문제는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성희롱을 성희롱으로, 성차별을 성차별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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