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칼럼

[플랫]윤여정의 수상 소감을 ‘아들 잔소리’로 오역한 언론이 해야 할 것

지난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를 발간하였다. 세계신문협회의 이니셔티브인 ‘위민인뉴스(WIN)’의 발간물을 번역하여 싣고, 우리 현실에서 미디어와 성평등 문제에 대해 어떤 문제가 개선되어야 할지를 권김현영 교수와의 대담 및 한겨레 젠더데스크의 경험을 통해 풀어내었다.

이 가이드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젠더 균형을 갖춘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 미디어는 왜곡된 세계관을 확산시킨다. (중략) 이러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명시한 부분이다. 언론이 성차별적 고정 관념의 유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 차원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어낸 것이다.

이를 위해 해야 하는 일로 가이드는 콘텐츠에서 여성을 부각할 것, 여성의 목소리를 담을 것, 여성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을 찾을 것을 제안한다. 경향신문의 플랫, 한겨레의 슬랩 및 최근 4월에 시작한 한국일보의 뉴스레터 허스토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성을 부각하여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 이 콘텐츠들은 청년 세대의 뉴스 소비 방식과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맞추어 멀티미디어와 상호작용성을 십분 활용하는 형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 기획들은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을 보도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들이 그 형식상 담아내기 어려운 심층 분석을 시도하거나, 여성의 관점을 보여주는 기사들을 하나로 모아내는 역할을 한다. 변화하고 있는 여성 독자들의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살려내고 이를 지지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더하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는 해당 가이드에서 강조하듯, “언론이 독자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제대로 반응함으로써” 성평등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한편 가이드는 보도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 중심으로 묘사하며 폄하하면” 안 되고, “여성을 남성의 아내나 여자친구 딸로 묘사하기보다 주체적인 한 명의 개인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여성을 ‘개인’으로 다루는 것이 우리 언론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을 정도로 문제적 사례가 쌓여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꼭 필요한 지침이다.

최근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수상 소식을 전달하면서 ‘일하는 어머니’의 정체성을 표현한 명료한 수상 소감을 ‘아들이 잔소리해서 일하게 된’ 것으로 해석하여 보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오역’은 여성의 일을 여성 개인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을 것으로 가정하여 기사를 구성하는 차별적 인식이 작동한 결과이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 정치인에게 남편의 반응을 묻고 양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궁금해하거나, 여성 기업인에 대해 보도하면서 남편의 지지를 중요하게 부각하는 데에서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에서의 성차별적 관행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선거 결과와 관련하여 청년이라는 명명하에 청년 남성 문제만 부각하면서 제3의 길을 선택한 청년 여성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에서, 여성의 성과에 대해서 보도하면서 그의 의상과 화장·피부에 대해 언급하는 기사가 양산되는 것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동 가이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조직의 변화이며,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지도부가 거부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함을 지적한다.

몇몇 언론들의 의미 있는 시도가 여성 기자들만의 고군분투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부의 움직임이 절실하다. 소중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지속적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데스크 차원에서 먼저 젠더 균형을 위한 가이드와 그 문제의식을 앞장서서 수용할 책무성을 가져야 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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