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백영옥이 만난 '색다른 아저씨'

(11) 디자이너 정구호

ㆍ옷 잘 입는 비결은 자신감… 좋은 옷은 사람이 먼저 보이는 옷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하루 10번의 회의·10개 이상의 패션 브랜드를 꾸려나가는 남자…

“남자를 유혹하고 싶으면 남자가 디자인한 옷을 입으세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공에 대한 정의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말했다. “제게 성공은 쇼를 계속할 수 있는 거예요. 또 하나 끝났고, 다음 쇼 준비해야죠!” 그것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의 성공론이 꽤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아기 토사물 같은 맛이라는 망고 스틴즙과 우유 단백질, 고지즙 같은 요상한 액체류와 소화제 몇 알을 첨부해 식사로 챙겨먹는 이 골초가 루이뷔통 같은 거대 브랜드를 이끌며 쇼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며 ‘칼로리’가 꼭 ‘에너지’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담배와 커피, 프로틴 바가 식사를 대신하고, 물만 마셔도 반드시 소화제를 함께 먹어야 하는 소화불량의 세계도 있다는 돌연한 깨달음 같은 것도 얻고 말이다. 


2010년 뉴욕 컬렉션. ‘하퍼스 바자’와 함께한 패션필름 속의 정구호는 진지하고 피곤해 보였다. 미국 세관을 통과하지 못한 가죽제품 때문에 사업부문 담당이 멸종위기동물과에서 브로커를 만나고, 쇼 당일 내린 폭설 때문에 학교들이 일제히 휴교령을 발표하는 동안, 쇼를 이끌어갈 모델은 컨디션 난조로 백스테이지에서 쓰러졌다. 이때, 하루에 5년씩 늙는 것 같다는 이 남자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야흐로 중국과 태국, 필리핀의 디자이너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는 패션 아시아의 시대였다. 그는 국가대표처럼 뉴욕에 서 있었다. 


첫 뉴욕 진출,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노력해야죠”라는 대답을 남겼다. 카메라 속 누군가가 한 번 더 “그래도 안 되면요?”라고 묻자 더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그래도 안된다면요?” 좀 얄궂게 들렸다. 하지만 정구호는 지치지 않고 “그럼 죽기 살기로 더 노력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노력이란 말을 세 번에 걸쳐 말하는 이 남자의 얼굴을 나는 천천히 바라봤는데, 비음 섞인 그의 목소리는 티슈처럼 나긋나긋했다. 노력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조화였다. 숫자 3은 서양에선 완벽에 가까운 수다. ‘헥사 바이 구호’의 첫 이름은 ‘33by kuho’였다. 


아마도 사람들이 정구호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시간과 효율에 관한 것일 게다. 어떻게 ‘제일모직’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하루 10개 정도의 회의를 주관하고, 자신의 브랜드 ‘구호’ 이외에 10개 이상의 브랜드를 총괄하면서 영화의 미술감독을 하고(영화 <스캔들>로 미술상을 받았다), 무용극을 연출하고(단순히 의상 디자인이 아니라!), 방송에 출연하며(<프로젝트 런웨이> 심사위원과 요리 방송들), 강연, 패션쇼, 기부행사,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협업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뉴욕에서 몇 년 동안 직접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던 정구호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내가 그에게 처음 전화를 건 것은 패션지 기자였던 2005년이었다. 전화를 받은 건 비서실이었고, 바쁜 스케줄로 인터뷰는 세 번 이상 거절당했다. 그때 주제는 ‘패션’이 아닌 ‘음식’이었다. 


■ 구호, 남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1위에 뽑힌 적도


“전 항상 뭘 더 할까를 생각하지 빼거나 덜 할까는 생각하지 않아요. 현대무용 연출은 2015년까지 잡혀 있어요. ‘단’ 공연 이후에 국립극장에서 제의가 와서 임성주 감독님과 한국무용을 주제로 새 작품을 할 것 같고요. 최근에는 여유가 좀 생기는데, 스스로 너무 나태하단 생각이 들어서 뭘 열심히 배워볼까 고민 중이에요.”


잠자는 게 별로냐는 질문에 그는 자는 걸 정말 좋아한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깨어 있는 쪽이 더 좋아요!” 이틀에 한 번꼴로 잔다는 오지 여행가 한비야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다윈의 진화론에 새로운 챕터가 붙어야 한다면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종’의 수면 패턴! 새로 적힌 이론에는 잠을 줄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한 사람들이 우성인자라는 가설이 첨부되어 있을 것 같다.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소설을 쓰는 삶이 내겐 딱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의과대학을 나온 여자가 난데없이 단추 디자이너가 되거나, 생명공학으로 힘들게 박사학위를 딴 남자가 전업가수를 선언하고 난데없이 소설집을 냈다면, 그 삶은 돌연 패턴을 벗어나 매혹적인 성공과 실패담으로 뒤덮인다. 바늘이든, 찰흙이든, 밀가루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손안에 넣고 조몰락거리며 무엇인가를 만들던 몽상가 기질의 소년은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좌절한다. 유학길에 올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던 그가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며 회사에 다니고, 레스토랑을 차리고, 자신의 아틀리에를 운영했던 이야기는 두세명분의 이야기를 압축시켜 놓은 듯했다. “전 사랑 때문에 직업을 세 번이나 바꿔야 했어요.” 사랑 때문에 직업을 세 번이나 바꾼 남자에게 매혹당하지 않을 여자란 없다. 그런 남자가 만든 옷이라면 어찌됐든 입어보고 싶지 않을까. 


오래전, 어느 카페에서 ‘돌체 앤 가바나’의 인터뷰를 읽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자신은 여자가 입기에 편한 옷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불편함을 디자인한다는 말은 나처럼 편안한 옷을 선호하는 여자에겐 선정적인 캐치프레이즈 같았다. 


“그게 대표적인 남성 디자이너와 여성 디자이너의 차이점이에요. 여성 디자이너는 편한 옷을 만들지만 남자들은 편한 옷을 만들 수가 없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여자들은 옷을 직접 입어볼 수 있지만 남자들은 상상해 옷을 만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봤을 때 좋아 보이는 형태를 만들려고 노력하죠. 내가 원하는 이미지가 있으면 약간 불편함이 있다 해도 그 이미지를 위해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전에 트임 없는 9부 스커트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 패션지 편집장님이 제가 만든 스커트를 입고 버스를 타다가 넘어지셨다더군요.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중엔 생각을 정리했대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는 뜻인 거 같다고. 전 트임이 안 예쁘니까 스커트에서 그걸 없애고 싶었던 거예요. 불편을 감수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할 수 없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 거죠. 남자를 유혹하고 싶다면 남자가 디자인한 옷을 사는 게 더 유리하죠. 예전에 조사한 적이 있는데, 구호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1위에 뽑힌 적도 있어요. 하하하.” 


■ 생각은 화장실서도… 브레인스토밍 안해


한국의 디자이너들 중, 대기업과의 협업에 성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자신의 예술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얻기 위해서는 동물적인 균형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구호는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일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를 조화와 균형에 극히 민감한 사람, 중간자, 스타일리스트 혹은 코디네이터로 규정하기도 했다. 


“다른 장르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통역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코디네이터죠.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중요한 일들을 해낼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매개하고, 연결시키는 거죠. 저도 패션을 하지만 패션디자이너가 순수예술 장르의 아티스트랑 협업하는 건 쉽지 않아요. 그런 걸 굉장히 잘하는 영국 브랜드 중에 ‘프레드 페리’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거긴 레이 가와쿠보 같은 전위적인 디자이너와도 성공적으로 일을 하더군요. 비결을 물었더니 ‘협업’만 도맡아 처리하는 담당자가 있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렇게 많은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할 수 있었던 비결과 설득의 기술이 궁금했다. 


“회사에 들어와서 대화의 스킬이 느는 것 같긴 해요. 그림 그리는 사람의 대화와 계산하는 사람의 대화는 다르거든요. 사실 영화감독들도 그림을 못 그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글’로 생각하고 ‘플롯’을 짜는 게 그들의 언어인 거죠. 그래서 다른 분야의 분들과 얘기할 땐 처음엔 얘기가 잘된 것처럼 보이는데 결과가 엉뚱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전 끊임없이 반복해서 체크해요. 확인에 재확인을 해서 서로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하는 거죠. 그런 반복이라면 얼마든지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가 평소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해가 돼?”였다. 그는 기능과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완벽을 지향하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메모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여행 중엔 사진도 거의 찍지 않는다. 이미지는 스캔하듯 그의 머리 어딘가에 늘 저장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훈련 효과인지 물었다. 


“효율적으로 집중해서 시간을 줄이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브레인스토밍도 안 좋아해요. 전 오히려 그걸 찢어져서 하자고 말하거든요. 생각은 화장실에서든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 옷도 굉장히 빨리 사요. 매장의 크기와 상관없이 옷을 고르는 데 5분도 안 걸려요. 옷을 보면 디테일들이 전부 상상되거든요. 그래서 시장조사를 같이 가면 다른 디자이너들은 제 속도에 맞추느라 하나도 보질 못해요. 뉴욕에서 공부할 때 하던 일이 하루 종일 옷을 보는 일이었으니까. 그때 산 마틴 마르지엘라의 첫번째 쇼의 옷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디자이너 정구호의 해외 컬렉션 라인 '헥사 바이 구호'에서 선보인 매니시 룩 (출처 :경향DB)



■ 인간의 ‘몸’ 알기위해 해부학 책 읽어


정구호를 규정하는 말들 중엔 미니멀리즘과 아방가르드가 빠지지 않는다. 언젠가 그가 곤충의 몸을 인간의 몸에 얹어 놓았을 때, 인간의 몸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고민하며 만든 옷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해부학 책도 열심히 본다. 


“뫼비우스라고 해서 2000년, 밀레니엄쇼를 덕수궁에서 한 적이 있어요. 밀레니엄 버그니 뭐니 해서 그때 말이 많았잖아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정의도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는지 기준을 찾기 위해 만든 것이지, 우리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 모르는 커다란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 있잖아요. 그걸 규정지으려는 게 싫어서 만든 옷이었어요. 옷 패턴이 전부 연결되어 있는 옷이었고, 쇼 중간에 모델이 살짝 멈췄던 적이 있어요. 삐 소리가 나고, 다들 멈춤 상태로 있고. 사람들은 사고가 난 줄 알던데, 전 잠시 모든 걸 정지하고,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생각해보란 의미로 기획한 쇼였죠. 또 제가 만들었던 옷 중에 ‘탈피’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한 게 있어요.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건 다 똑같잖아요. 원래의 나를 탈피해 사랑과 용서와 믿음으로 좋은 사람 되는 것. 근데 왜 서로 자기 종교만 믿으라고 하며 싸워댈까 생각하다가, 여러 나라의 종교를 섞어서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예전부터 사왔던 옷, 더 이상 못 입는 옷들을 가지고 종교복식의 형태를 만들었어요. 재밌었어요. 뉴욕에선 패션디자이너가 왜 그렇게 복잡한 아이디어를 냈냐는 얘길 들었지만요.” 


뉴욕 사람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더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저도 놀랐는데 정말 싫어해요. 하하하. 오히려 화이트 드라마, 러시아 인텔리즘 같은 쉽고 명확한 접근을 훨씬 더 좋아하죠. 갈수록 더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유럽도 그렇게 변하고 있고, 제가 확실히 느꼈어요.”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자신의 생각과 노선들을 정리하고 있는 듯했다. 


비주얼을 읽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자꾸 하고 싶은 거예요.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스토리를 직접 설명하려면 어려우니까. ‘하트 포 아이’를 통해서건 ‘비이커’를 통해서건 다른 일들을 통해서 설명을 드리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하트 포 아이’는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 아이들의 개안수술을 도와주는 프로젝트다. 편집매장 ‘비이커’에 전시된 많은 물건들은 재활용품으로 만들었다. ‘구호플러스’의 옷들은 모피와 가죽을 사용하지 않으며, 힙합 브랜드 ‘푸부’의 경우, 다양한 독립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기부나 사회환원에 이야기를 담으려는 노력은 인문학과 철학적 상상력이 바탕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요즘 ‘자크 데리다’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문득 한복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입힐 것인가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그가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정구호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한복을 많이 안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복은 제대로 입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이 남자는 불편하단 이유로 고름 대신 벨크로 여미고 단추를 다는 행태는 잘못된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조용히 주장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전통 의복을 입을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왔던 사라 제시카 파커 같은 여인이 옷을 잘 입는다고 하는데 그녀의 몸 보셨어요? 키가 150 몇밖에 안되고, 팔다리도 길지 않고 마르기만 한 여인인데 모든 옷을 소화하잖아요. 그건 자신감이에요. 예전에 허리가 40이 넘는 어떤 여자분을 봤는데 옷을 너무 잘 입는 거예요.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전 다리가 짧으면 무슨 치마를 입어야 하고, 허리가 두꺼우면 무슨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건 조금도 와닿지 않아요. 전 키가 작아도 항상 롱 재킷만 입거든요. 그게 제 캐릭터니까. 옷을 입으면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이 먼저 보여야 합니다. 전 그런 옷을 만들고 싶어요.” 


■ 구호에서 시작된 내 오랜 사랑의 역사


디자이너 정구호를 인터뷰하러 가기 전, 옷장을 뒤졌다. 나는 ‘구호’의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인터뷰에 나설 참이었다. 하지만 2012년, 유독 이사가 많았던 내 유목생활의 피폐함은 옷장에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결국 구호의 스커트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구호’의 옷과 관련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에릭 클랩튼의 공연이 있던 날, 그 남자와 나는 서울 잠원동의 버거킹 매장 앞에서 만났다. 그의 손에는 청하출판사에서 나온 니체 전집이 들려 있었다. 니체는 우리의 첫번째 접선을 위해 필요한 표식이었다. 당시 나는 휘문출판사에서 나온 니체 초판본을 구하기 위해 신림동 녹두거리의 헌책방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모든 연애에 실패했던 나는 ‘당신은 당신 삶의 규칙의 희생자다’라는 미술가 제니 홀저의 구호를 신봉하던 정신주의자였다. 물론 패션 따위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클래식한 검은색 슈트를 입은 그 남자의 발에 신겨져 있던 아디다스 운동화가 불균형하다고 느꼈다.


“달리기 좋아하나 봐요?” 그것이 내 첫 질문이었다. 바야흐로 PC통신의 시대였고, 누구라도 본명을 대신할 자신만의 대화명을 가지고 있었다. 내 대화명은 무표정이었다. 그때의 나는 참으로 무표정한 여자였다. 사진가였던 그 남자는 그날, 에릭 클랩튼을 찍고 잠실에서부터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운동화는 옵션이 아니었다. 


그는 내게 ‘구호’의 옷을 처음 알게 해준 사람이었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보통의 어느 날, 그 남자가 데려간 곳이 구호의 매장이었다. 매장의 옷들은 대부분 검거나 흰색이었고, 얼핏 수녀나 신부의 옷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검은색 외투 앞에서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입는 게 아니라, 벗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선물하는 거예요.” 그는 H라인 스커트를 내밀며 나를 바라보더니, 좋아하는 축구팀 선수와 마주친 소년처럼 활짝 웃었다. 


패션에 관심이 없던 나는 패션지에 취직했고, 번역된 소설 따윈 읽지 않던 그 남자는 보르헤스를 읽기 시작했다. 짐작하건대, 구호의 옷이 어디에 있는지는 우산이며 귀고리를 수도 없이 잃어버리는 나보단, 침착하고 꼼꼼한 그가 더 잘 알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알아보는 것. 커져가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조용히 다가서는 것. 그리고 끝내 결핍 안의 공기가 되어 숨쉬게 하는 것. 정구호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가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실루엣은 공기가 있는 실루엣이에요. 옷이 살에 붙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그건 너무 불편하지 않아요? 나는 자연인데 옷과 살 사이의 어떤 공기가 꼭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기준으로는 그래요.” 구호의 옷은 공기를 닮았다. 벗는 것과 입는 것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옷이 누군가에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에게 고마웠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내 오랜 사랑의 역사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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