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백영옥이 만난 '색다른 아저씨'

(16) 디자이너 조수용 ㆍB급 느낌이 가장 좋아… 남들이 다 망할 거라는 일에 승부 걸죠 ▲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 만들어…“모든 길과 식당이 대형몰에 잡아먹히는 세상,‘자본주의 암부’ 없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어” 패션에 예민한 여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게 구두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슈어홀릭’은 아니지만 내게도 구두와 얽힌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구두 브랜드 ‘토즈’는 땅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도쿄의 오모테산도힐즈에 매장을 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진행 도중 건물의 디자인을 전면 변경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주변 상인들이나 민원, 고비용이 아니라 느릅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토즈’는 나무를 베거나 훼손하지 않고 건물 전체를 느릅나무의 나뭇가지를 이용한 디자인.. 더보기
(15) 소설가 김영하 ㆍ이젠 하루키 읽으면 졸려… 번역은 힘들어서 그만두려 해요 ▲ “밀당하는 게 피곤해 출판사는 한 곳으로 단일화… 사람 보는 눈은 없어도 글을 보면 정확히 판단해요, 그래서 누가 청탁하면 이메일을 보내라 하죠” ‘나쁜 살인은 나쁘다’라는 말을 쓴 사람은 의 작가 콜린 윌슨이다. 그렇다면 좋은 살인도 있는 건가, 라는 질문을 파생시킨다는 점에서 이 문장은 내게 매혹적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김영하의 소설 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의 맥박을 단박에 보여준다. 치매에 걸린 70대 연쇄살인마의 시간은 분명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김경주의 시를 인용해 ‘내 고통에는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 더보기
(14) 개그맨 남희석 ㆍ사람 ‘간’ 잘 보는 게 MC… 방송선 짧거나 도발적인 말이 인기 ▲ “연예인은 잘못하면 법적 제재 외에도 자숙해야 돼요…정치요? 돈 때문에 생각도 안 해요,10원 한 장 후원 안 받고 월급만으로 해야 되는데” 27승64패. 승률 0.297. 9개 구단 중 압도적 꼴찌. ‘한화 이글스 팬은 부처님이다’라는 말은 개막 후 13연패를 내달리던 김응용 감독 자신이 2013년 4월24일자 인터뷰에서 직접 꺼낸 말이다. 단체로 부처님 가면을 쓰고 목탁을 두들기며 응원하는 한화 팬들의 사진은 ‘불교TV’의 자료화면으로도 쓰였으니 말을 말자. 개그맨 남희석을 만났을 때, 그는 충청도에서 유독 개그맨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는 내게 “충청도엔 열사도 많아요. 유관순 누나, 윤봉길 의사!”라는 말을 꺼냈다. .. 더보기
(13) 철학자 강신주 ㆍ누구에게 상처 줘 봤어요? 상처 받을수록 강해진다는 건 거짓말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칙으로 사는 그…미워할 사람을 제대로 미워 못하면 사랑해야 할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단다 강신주. 1967년생. 경찰서에 붙잡혀가도 잠을 잘 정도의 공대생이었으나, 진로를 바꿔 철학을 공부했다. 2013년 7월 현재, 스물일곱 권의 책을 썼다. 두 권의 대표작은 과 . 객관적 철학사는 표방하지 않는다. 가령 제자백가 시리즈에서 맹자의 지위를 현격히 떨어뜨려 중국 고대철학 최초의 악플러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식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자유의 의미를 체감한 시인 김수영은 강신주의 정신적 아버지.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에 김수영의 미발표작 ‘김일성 만세’를 소개하며 4·19를 바.. 더보기
(12) 사진가 윤광준 ㆍ성직자도 아닌데 왜 참죠, ‘잔욕망’ 해소시켜 나를 가볍게 해야 ▲ 세상 모든 물건들의 애호가·감각주의자·오디오 칼럼니스트…“먹어보고 짜면 안 먹을 테니, 즉각적인 감각이 주는 명확함에 더 끌려요” 사진 찍는 남자들은 당혹스럽다. 이 편견에 가득 찬 문장이 적어도 내겐 반쯤의 진실이다. 2005년 사진가 배병우를 헤이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했을 때, 그는 내게 “사진에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첫 번째 질문은 곧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졌고, 여수 남자인 이 사진가는 어부 같은 손으로 고등어 스파게티를 만들더니, 아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가 내게 물어본 질문이 내가 그에 관해 묻고 싶었던 질문지보다 더 길 것이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순식간에 바뀌는 당황.. 더보기
(11) 디자이너 정구호 ㆍ옷 잘 입는 비결은 자신감… 좋은 옷은 사람이 먼저 보이는 옷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하루 10번의 회의·10개 이상의 패션 브랜드를 꾸려나가는 남자…“남자를 유혹하고 싶으면 남자가 디자인한 옷을 입으세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공에 대한 정의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말했다. “제게 성공은 쇼를 계속할 수 있는 거예요. 또 하나 끝났고, 다음 쇼 준비해야죠!” 그것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의 성공론이 꽤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아기 토사물 같은 맛이라는 망고 스틴즙과 우유 단백질, 고지즙 같은 요상한 액체류와 소화제 몇 알을 첨부해 식사로 챙겨먹는 이 골초가 루이뷔통 같은 거대 브랜드를 이끌며 쇼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며 ‘칼로리’가 꼭 ‘에너지.. 더보기
(10) 영화감독 장항준 ㆍ‘노는 인간’이라 정의될 법한 남자… 실패도 독창적으로, 재밌게 ▲ 배우·작가·연출자·스타 작가의 남편으로 다양한 이력…“드라마 찍으며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지 않는 법 배웠죠” 영화감독 장항준과 관련된 내 첫 번째 기억은 그가 어느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이었다. “제가 모텔 단골이라서, 돈 없는 날 여자친구랑 가면 외상을 해줬어요.” 소설가 K가 혼자 떠난 여행에서 ‘숙박 3만원, 대실 1만5000원’이란 팻말을 보고 했단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 저 진짜 돈이 없어서 그런데, 대(큰 대)실 말고, 소(작을 소)실은 없어요?” 하하하! 두 남녀를 떠올리며 눈물 나게 웃어댔었다. 두 사람 모두 돈이 없었다는 점에선 동일하나, 한 명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한 명은 여행을 떠나는 여자로 모텔의 기능.. 더보기
(9) 여행가 유성용 ㆍ사람들이 굳이 올레·둘레길을 택하고 완주에 집착하는 게 희한 ▲ 지금 필요한 건 나를 좀 버려두고 걸을 수 있는 공간…요즘 사람들은 여러 겹의 인생 안전장치 쳐 놓아 다양한 사건 못 만나 정신적인 고통에는 오로지 하나의 해독제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 카를 마르크스 “제니 필즈는 마흔한 살이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으며 그녀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내용을 글로 쓰는 것이었다.” 에 나오는 존 어빙의 말을 내게 처음 얘기해준 사람은 소설가 C였다. 마흔이 되면 뭐가 달라지냐는 서른 몇 살 후배의 말에 그는 40대야말로 장편을 쓸 수 있는 최고의 나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내게 그것은 쓸쓸한 위로의 말이었다. 소설을 잘 쓸 수 있다는 말보다, 마흔 살이 앞으로 쓸.. 더보기
(8) 신부 홍성남 ㆍ틱낫한 욕 많이 했다… 살 집 부서질 땐 평상심 대신 크게 싸워야 ▲ “신부는 거주지가 불분명하고 마피아 조직이나 군대와 비슷…순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 명동성당을 가던 길에 오래전 일 하나가 떠올랐다. 붙잡는 사람 없는 그곳에 우연히 들어간 적이 있다. 성당에는 띄엄띄엄 사람들이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엔 접할 수 없는 높이 때문이었을까. 성당 천장 위에선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햇볕이 날아다녔고, 한없이 내가 작게 느껴졌다. 기도를 하다가 나는 조금 울먹였던 것 같기도 하다. 머릿속에는 천상의 소리처럼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내 죄를 사하노라!” 태어나서 신부님과 단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고해성사라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더보기
(7) 정신과 의사 서천석 ㆍ치유는 사실상 불가능, 상처의 흔적일 뿐인 흉터에 집착 말아야 ▲ 여성도 아이들도 우울증은 흔한 병…“위로는 상대에게 내 시간을 선물하는 것”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어른 마음까지 보듬다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을 만났을 때, 그가 내게 처음 던진 질문은 “아니, 왜 저를 인터뷰하시려고요? 제가 유명인도 아니고!”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란 책을 읽고 있었다. 동생의 자살로 괴로워하던 한 여자가 ‘왜?’라는 의문을 품고 동생의 삶을 추적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심리부검’이란 말을 만났다. 책의 부제가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이었기 때문에 ‘자살생존자’란 말도 처음 보았다. ‘처음’이란 말에 이토록 세게 부딪치기도 처음이라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다. 친구가 우울증에 걸려 죽음을 말하기.. 더보기
(6) 작가 박상연 ㆍ잘 쓰는게 아니라 잘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단 걸 알았죠 ▲ 복선 많이 넣으면 잘 쓴 것처럼 보여…난 셰익스피어보다 글 많이 써, 그러니 내 드라마가 예술일 순 없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2세는 ‘형제 살해법’을 칙령으로 공표했다. 아들 중 누구라도 술탄의 왕좌를 물려받으면 즉시 자신의 형제들을 모두 죽여야 하며, 종교 지도자와 법률학자들이 이 절차를 이미 승인하고 허용했다는 말이다. 드라마 의 이방원은 아들 ‘이도’(세종)에게 권력에는 독이 있어 그것을 밖으로 뿜지 못하면 안으로 썩는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긴다. 피 냄새가 가신 적 없는 아비의 자리를 보고 자란 이도는 자신의 유약함을 저주하며 다른 세상을 꿈꾼다. 그렇게 권력의 독을 안으로 품어 ‘문’(한글).. 더보기
(5) 광고인 박웅현 ㆍ밥 먹을 땐 먹고, 쉴 땐 쉬고… 개처럼 살며 ‘현재를 붙잡아라’ ▲ “가정 포기하려면 광고를 왜 해요”모든 사생활이 모든 복무에 우선한다는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 닮아 누군가 카푸치노의 풍성한 거품을 보고 구름을 떠올렸다면, 맑은 하늘 위의 흰 구름일 것이다. 그런데 기상청에 전화했더니 일주일 안에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구름을 수렵하기 위해 떠나야 한다. 한 남자가 카푸치노 잔에 구름을 담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이나영이 나오는 카푸치노 광고 ‘훔치고 싶은 거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제품의 실제 거품이 지중해 도시 한복판의 구름처럼 풍성한지 아닌지는 2차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앤디 워홀이 광고주에게 들은 살벌한 충고도 ‘스테이크가 아니라 스테이크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팔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