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백영옥이 만난 '색다른 아저씨'

(15) 소설가 김영하

ㆍ이젠 하루키 읽으면 졸려… 번역은 힘들어서 그만두려 해요



사진 _ 위즈덤하우스 제공



▲ “밀당하는 게 피곤해 출판사는 한 곳으로 단일화… 사람 보는 눈은 없어도 글을 보면 정확히 판단해요, 그래서 누가 청탁하면 이메일을 보내라 하죠”


‘나쁜 살인은 나쁘다’라는 말을 쓴 사람은 <아웃사이더>의 작가 콜린 윌슨이다. 그렇다면 좋은 살인도 있는 건가, 라는 질문을 파생시킨다는 점에서 이 문장은 내게 매혹적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의 맥박을 단박에 보여준다. 치매에 걸린 70대 연쇄살인마의 시간은 분명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김경주의 시를 인용해 ‘내 고통에는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었을 때, 나는 열 살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는 이 남자의 과거를 떠올렸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동안 김영하의 창세기가 궁금했다. 그렇게 17년 만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다시 읽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0년이었다. 신촌의 독수리다방 앞에서 만난 그날,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는 목이 쉬도록 얘길 했다. 당시 이 남자는 카메라와 사진에 관심이 많았고, 조용필의 어떤 노래들을 극찬했으며, 작가들의 작가인 김승옥의 문장을 얘기하다가 ‘번역을 견디는 단단한 문장’에 대해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면 없는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생의 인터뷰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그도, 다짜고짜 전화부터 한 나도, 참 별났다. 


김영하를 두 번째 만난 건 2005년이었는데, 그가 싸이월드에 썼던 글을 모아 <랄랄라 하우스>라는 산문집을 발표한 때였다.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던 나는 우연히 이 남자의 신간낭독회를 봤는데, 그가 책을 읽다가 따옴표를 표현하기 위해 검지와 중지를 높게 들고 구부릴 때마다 폭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즐거워 보였다. 하긴 머리만 감겨주는 ‘머리방’이나 덕수궁이나 창덕궁에 재현배우를 섭외해 보여주자는 ‘조선왕조주식회사’ 같은 아이디어로 번득한 ‘랄랄라’한 산문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그의 연구실 문을 여는 순간, 멈칫했다. 창문까지 모조리 검게 막은 그곳이 너무나 ‘안 랄랄라’한 동굴 같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탓에 나는 황당한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매끈한 피부의 비결이 뭔가요?” 그때, 예의 낭랑한 목소리로 그가 했던 대답이 “안 씻는 게 비결입니다!”라는 말이었다. 아이 없는 삶에 대한 질문에는 “그럼 아이 안 낳는 사람들의 얘기는 누가 써요?”라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이후 밴쿠버, 시칠리아, 뉴욕을 떠도는 흔적의 행간들은 그의 팟캐스트와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다. 2013년, 8년 만에 부산에서 만난 이 남자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아직도’ 씻지 않는 게 동안의 비결이냐고 묻자 ‘여전히’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 과거의 기억들이 차례로 호출되었다. 그중 한 가지만은 아주 명료하게 떠올랐다. 인터뷰 말미에 언제나 그의 목소리가 쉬었다는 것. 


■ 정신적 건강 챙겨 지속 가능한 소설가로 살고 싶어


- 몇 년을 밴쿠버, 시칠리아, 뉴욕, 부산을 떠돌며 살았어요. 뉴욕에는 꽤 오래 머물면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썼고요. 


“천천히 살았죠. 전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는 게 아니고 센트럴파크가 뉴욕인 거 같아요. 처음엔 그냥 공원에 갔는데 나중에는 많은 게 필요하더라고요. 비도 오니 우산도 가져가고 읽을 책도 필요하고, 물이나 음식도 필요하고, 나중에는 카트가 필요했어요. 근데 하루는 카트를 끌고 우산도 꽂고 가는데 어떤 놈들이 나를 자꾸 쳐다보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노숙인들이 카트를 끌고 지나가면서 나를 본 거였어요. 그때 깨달았죠. 아! 자기한테 필요한 걸 다 갖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노숙인이구나. 가로수길의 갑은 슬리퍼 끌고 개 산책시키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뉴욕에선 연극을 많이 봤어요. 전부 알아듣지 못하니까 내 맘대로 상상하기도 했고요. 연극을 완벽하게 이해해서 채우는 게 꼭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느꼈죠. 도시에서 조용한 곳을 좋아해요. 시골은 생각보다 시끄러워요. 새들 지저귀고 맨날 이장님 방송하시고. 한번은 캠핑을 좀 다니다가 산에서 텐트 치고 자는데 새벽 6시쯤에 아이폰이 울리는 거 같아서 누가 이렇게 크게 알람을 켜놨나 했는데 알고 보니 시끄러운 새소리였어요.” 


-작가들은 공간에 유독 예민하죠. <살인자의 기억법>을 쓴 부산은 어떤가요. 


“경상도 남자들의 말은 짧고 시적이에요. 쫌! 됐다! 이런 말, 참 많은 걸 함축하고 있죠. 이번 소설은 좀 남성적이고 짧은데, 그런 영향을 받아요. <퀴즈쇼>를 쓸 때는 문학동네 반품창고에서 글을 썼어요. 아마 세계 문학사상 자기 책이 반품되는 창고에서 글을 쓴 작가는 없을 거예요. 글 쓰고 밥 먹으러 나가다 보면 제 책들이 반품되고 있는 게 보였거든요. 직원들은 막 숨기려고 하는데, 제가 됐다고 하고. 하하하. <퀴즈쇼>는 앞에 홍대 얘기가 나오다가 뒤에는 창고로 가거든요. 파주 산속에 있는 창고에서 그걸 쓴 거예요.” 


- 이번 소설은 ‘살인’이 아니라 ‘기억’을 다루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쯤이겠네요.


“10년 전에 구상하고 그 뒤로 계속 잊고 살고 있다가, 올 초에 이걸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작을 쓰기 전에 잠깐 가볍게 쓰고 간다, 스티븐 킹이 <쇼생크 탈출>을 쓰듯이 그렇게요. 서두를 썼을 때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근데 이 인물이 치매 때문에 자꾸 생각이 끊기잖아요. 인물의 호흡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잘 설계된 카오스가 필요한 소설이었죠. 회상과 실제 일, 여러 단상들이 섞여서 굉장히 복잡한 플롯을 이루고 있거든요.” 


- 한 호흡에 쓴 소설이 있나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보름 만에 쓴 거예요. <검은 꽃> 같은 경우도 취재는 오래 걸렸지만 연대기 순으로 갈 수 있는 거라서 편한 면이 있었고.”


- 열 살 때 기억이 사라진 체험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나요.


“최근에 돌아보니까 제 소설에 잊혀진 사람들 얘기가 많더군요. <빛의 제국>도 주인공이 북한에서 남파됐다가 잊혀져버린 인물이고요. 강제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단절되어버린 거죠. 지금 여기서 살아남아야 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이 필요하질 않아요. 제가 어릴 때 그랬어요. 열 살 때 기억을 잃어버린 이후에 계속 전학을 다니고, 서울에 오고, 그러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되고, 과거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검은 꽃>도 멕시코로 떠나서 완전히 잊혀져버린 사람들이에요. 한국 이민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들이죠.” 


-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시나리오도 썼어요. 손예진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죠. 


“처음에 쓸 생각이 없었는데, 초고를 읽고 나서 뭔가 오는 게 있었어요. 손예진이 자기한테 잘해주는 정우성을 보고 너무 고맙다고 옛날 남자 이름을 불러요. 치매는 단기기억을 잊는 병이니까 상대편에선 그걸 감당해야 하는 사랑인 거예요. 그게 2004년의 일이니까 10년 만에 소설을 쓰게 된 거죠. 언제나 그런 얘기를 들으면 혹해요.” 


- 지금까지 낸 작품을 보면, 장편은 과거의 이야기를, 단편은 당대적이라는 특징이 있어요. 이건 균형의 문제인가요.


“저는 단편을 쓸 때와 장편을 쓸 때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요. 단편을 쓸 때는 이런저런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써요. 장편을 위한 연습이랄까. 장편은 인생이 걸린 문제잖아요. 2~3년 길게는 5년씩 걸리잖아요. 그 기간 동안 그 인물들하고 살아야 되는데, 제가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장편을 하나 끝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전 일기를 쓰기 때문에 알 수 있거든요.” 


- 소설을 쓰면 착해진다는 얘기는 작가의 말에도 나와요. 하지만 신인 때, ‘귀걸이 한 소설가’라는 레테르가 아직도 유효해서 김영하 하면 젊은 작가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있는 것 같은데….


“신인 땐 예술적 자아가 어리고 미숙했죠. 그래서 귀걸이 하고 맨살에 조끼 입고 클럽 다녔나봐요. 지금은 멀쩡한 얼굴로 살아가게 됐어요. 오히려 예술적 자아들은 소설로 풀면 되는 거 같아요. 더 과감해지고, 소설 속에서 더 미친놈이 되는 거죠. 작가는 삶을 분별없이 살아선 안돼요. 제 몸을 불사르면서 한두 작품쯤 좋은 작품을 쓸 수도 있겠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붕가붕가레코드’의 모토가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래요. 전 지속 가능한 소설가로 살고 싶어요.


김영하 (출처:경향DB)


■ 번역은 끝이 없고 확신이 안 서


- 이번 책은 공교롭게도 하루키의 책과 같은 시기에 나와 선전 중이에요. 이런 속도라면 김영하의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처음 초고를 넘긴 다음에 출판사에서도 이거 꼭 70대 노인이어야 되느냔 말이 있었어요. 정말이지 독자는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전 하루키가 이제 졸리더라고요. <1Q84>나 <해변의 카프카>나 절 흥분시키는 게 없어요.” 


-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고, ‘고양이’를 키우고 ‘여행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종종 하루키와 비교되기도 해요. 작가 입장에선 좀 지루한 비교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제가 하루키보다 키도 크고 잘생겼다니까요! 요즘 고양이 키우는 작가가 한둘이에요? 그나마 뉴욕 가느라 맡긴 고양이도 장모님이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하루키가 <개츠비>를 번역한 게 2006년인가요? 좀 억울한 게 전 2003년부터 번역을 시작했어요. 하루키의 문학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가 번역가로는 정말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봤어요. 물론 저는 그런 훌륭한 번역가가 아니고요. 힘들어서 이젠 번역을 안 할 거예요. 내 소설은 이쯤 되면 됐다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번역은 끝이 없어요. 확신이 안 서요. 책을 낸 지가 3년이 됐는데 쇄를 거듭할 때마다 고치고 끝이 없더라고요. 사실 2003년부터 이걸 혼자 번역하다가 관뒀는데 뉴욕에 가니까 제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 거죠. 이게 소설에 나오는 퀸즈보로 다리고, 플라자호텔이구나, 5번가는 이렇구나. 그때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할 때라서 론칭에 맞춰서 마무리를 지었죠.” 


- 작년 제가 뉴욕에서 느낀 건 지하철에서 종이책보다 킨들로 읽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거였어요.


“미국에서 종이책을 주문하면 사나흘 걸려서 와요. 그래서 킨들로 다운받아 책을 보는 거예요. 하루면 책이 오는 우리가 굳이 전자책 볼 필요가 있나요? 몇 년 전까지도 전자책에 대해서 적극적인 편이었어요. 근데 요새는 다 종이책으로 사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종이신문은 대형 화면이고, 사람들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어요. 게다가 다양한 형태의 판형으로 접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시작과 끝이 있잖아요. 이건 매우 중요한 감각이에요. 어떤 사람이 프랑스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인터넷으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면 처음과 끝이 없어서 아무리 해도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대요. 어딘가 더 많은 정보들이 또 있을 것 같다면서요. 하지만 잘 편집된 책은 서문부터 인덱스까지 이 정도 하면 됐다 하는 느낌을 주죠. 종이책과 전자책은 상당 기간을 공존할 거 같아요. 문제는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가 아니라 다른 매체의 등장인 거죠.”


- 스티브 잡스가 디지털에 감수성을 집어넣은 건 맞지만 종이를 몽땅 잡아먹은 것도 사실이죠.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큰 충격은 사람들이 전부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단 거였어요. 예전엔 메트로라도 읽었는데. 뉴욕은 지하철에서 대부분 책을 봐요. 하지만 그들이 유독 책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3G는 고사하고 통화도 안되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들도 나가면 지하철역에 올라와서 다 검색하고 난리라고요. 제가 해외에 나가면 외국 작가들에게 그런 얘기 많이 해요. 한국이 겪고 있는 일이 곧 너희들이 겪을 일이야. 한국 작가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잘 지켜봐야 돼!” 


- 작가를 침몰하는 타이태닉에서 연주하던 현악 사중주단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문학 출판 모임에서 축사를 하라고 해서 새로 상을 받은 사람들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어찌나 암울해하던지. 그때, 우리에게는 침몰한 배에서 우아하게 가라앉을 의무가 있다고 그랬죠. 그랬더니 그 뒤에 소설가 김중혁씨가 올라와서, 그 배가 생각보다 천천히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말을 위로처럼 하더라고요. 참 착한 사람이야. 하하하. 세네카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을 늘 상상했대요.” 


- 불행을 예비하고 걱정하면 학습되나요. 


“세네카가 말하는 건 걱정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자기가 잃을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훈련이에요. 내년부터 내 책이 하나도 안 팔린다면, 나는 뭘 잃게 되나를 생각하는 건 걱정이 아니에요. 걱정은 구체적이지 않아야 걱정이죠. 인디언 속담에 그런 게 있잖아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막연한 걱정은 현재를 살아갈 때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고 나쁜 결정을 하게 만들거든요. 전 최악을 상상해봐요. 전 선인세도 안 받고, 인세도 1년에 한 번만 받아요. 그럼 어떤 해는 적게 들어오고, 어떤 해는 많은데 그걸 12개월로 나눠서 사는 거예요. 그럼 덜 불안하거든요. 요즘 생각하는 건 작가로 오래 살아가려면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다는 거예요.” 


- 다양한 출판사에서 낸 책을 전부 한 출판사로 모았어요.


“여러 출판사를 만나니까 피곤하더군요. 연말에 망년회 하면 가야 되고 편집자가 뭐 써달라고 하면 써줘야 하고, 출판사가 여러 군데가 되면 밀당을 해야 되잖아요. 2008년에 마흔이 됐는데 그때 삶을 단순화하자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강연 요청이 많은데, 그것도 ‘마이크 임팩트’라는 회사에서 관리해요. 제 담당자가 딴 데 가면 이렇게 말한다고 하더군요. ‘김영하 선생님의 일을 보고 있습니다. 주로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 우스갯소리지만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본 친구가 “김영하 책이 드라마화됐네!”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비슷한 면이 없진 않아요. 고등학생 나오고 남의 마음을 읽고 제목도 같고. 처음에는 모티브를 가져갔나 생각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그 드라마를 제 소설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제목이랑 표지를 ‘너목’들로 바꿀까 농담한 적도 있어요.” 


- 김영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경영학과 출신의 스마트한 소설가예요. 계약과 집필도 체계적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나 같은 사람이 헛똑똑이예요. 사람 보는 눈이 없어요. 이걸 인정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사람 때문에 철없이 멍청한 짓에 합류하거나, 황당한 일에 휘말리거나 했죠. 재밌는 건 제가 그 사람의 글을 보면 판단이 꽤 정확해요. 그래서 요즘은 누가 청탁하면 e메일로 보내달라고 해요. 전화로 하면 다 속거든요.” 


■ 사십대 중반 되니 장편 쓸 시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 이번 책을 읽다가 김영하 북리스트를 봤는데, 문학상 수상작이 아니라 해외 판권을 판 내용이 정리되어 있어 인상적이었어요.


“번역이 중요하진 않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 해적판으로 일본어 중역으로 된 거지 같은 번역으로 읽었는데 그렇다고 톨스토이 작품의 핵심적인 매력이 사라졌다고 생각은 안 해요. 번역보다 중요한 건 나라가 매력적이어야 해요. 필리핀 문학에 우린 관심 없잖아요? 전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예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1998년에 프랑스에서 나왔는데, 프랑스 번역자가 집이 한국이라서 우연히 그걸 샀고, 그 책 얘기를 들은 프랑스 출판사가 책을 냈죠. 그때, 전 제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지만 그후 7~8년 동안 어떤 연락도 없었어요. 이 책은 대산재단에서 번역 지원한 영어판도 있었어요. 근데 하코트 출판사에서 영어판을 보고는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러다 거기 편집자가 마침 불어를 잘해서 불어판을 보고는 ‘이거 재밌는데’라는 반응이 나온 거예요. 아마 그 편집자가 불어를 몰랐으면 이 책은 지금까지 판권이 하나도 안 팔렸을 수도 있어요. 다 운이죠.” 


- 이제 사십대가 지나가고 있어요. 요즘 중년은 53세부터라는 기사도 있지만. 


“장편을 쓸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해요. 장편을 잘 쓰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되거든요.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시간 법칙처럼 소설가의 창의성은 10년 이상의 숙련이 있을 때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새는 뭘 해볼까 하는 욕심이 들기도 하다가 늙으면 하자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과 영화 모든 것들이 다투는 건, 결국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으려는 거잖아요. 시간이라는 건 너무 희소하고 가치 있는 자원이기 때문에 아껴 써야죠.” 


고백하면, 2005년의 인터뷰 때, 내가 물었던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지극히 개인적이 고민이었다. 소설을 쓰는 대신 소설을 읽고, 소설가가 되는 대신 소설가를 인터뷰하는 ‘대신’ 인생에 지쳐가던 직장인은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써보라는 소설가의 충고에 퇴근길, 집 앞 호프집에 혼자 앉아 연달아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작가가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기억조차 못할 일이지만,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과, 한 명의 작가가 작가를 꿈꾸는 한 명의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이토록 지극하다는 것을. 장편소설을 한 권 쓸 때마다, 자신이 변했다고 말하던 그에게 “전 왜 안 변하죠”라고 물었다. 그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분명 변했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부산발 열차에서 그 말을 되씹다가, 마침 대구역에서 일어난 열차 충돌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부서진 열차의 잔해들을 긴급 투입된 복구반이 치우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내 삶의 성장이 그러했다. 전쟁 같은 일들이 일어났을 때, 그 참혹한 잔해들을 청소하면서 내가 조금씩 변했고, 그 ‘전쟁’이 내겐 대부분 ‘소설’을 쓰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장엔 예외도 있다. 소설가가 된 내게 소설가 김영하는 여전히 듣고 배워야 할 게 많은 전문가로 보였다. 그의 말처럼 인터넷에 없는 ‘시작과 끝’이 계절에 있었다. 복구를 기다리느라 멈춰선 기차 속에서도 여름의 끝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