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아녜스 바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90분

“망할 정치 때문에 그림에는 다들 관심이 없어.” 자신의 노래가 흘러나와도 귀 기울이는 사람 없는 카페에서 가수 클레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오랜만에 와보니 꽤 좋은 걸.” “퇴폐 시는 형편없어.” “피카소의 부엉이는 여자처럼 보여.” “아프리카에 갔을 거야. 인종차별주의자.”

 

거리를 걷는 그를 힐긋거리는 시선이 따갑게 꽂힌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서로의 시선은 서로에게 압박을 준다. “추하다는 건 죽은 거나 다름없어. 아름답다면, 난 다른 이들보다 살아 있는 거야.” 타인의 시선에 의지해 나를 붙잡는 클레오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각자 자기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사람들의 일상, 그 부서진 대화 사이를 걷는 시간이 불안하다.

 

암에 걸린 것이 아닐까 의심하던 그는 병원의 최종 진단을 기다리고 있다. 운명에 대한 어떤 두려운 선고를 예감한 그는 타로점도 봤다. “진심을 담아서 뽑으면 점괘가 더 잘 나와요.” 카드를 읽은 타로마스터는 클레오의 인간관계를 애매한 단어들로 설명하지만, 정작 궁금한 병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한다. “해석하기 어려움 점괘예요.”

 

의사로부터 결과지를 받아들기 전,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조금씩 잠재워 준 것은 파리 거리의 무심한 풍경,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다. 죽음을 앞두었다고 믿은 덕분에 비로소 어떤 기대가 압박하는 시선 바깥에 설 수 있었던 그는, ‘바라보는 자’의 위치에서 관조의 여유를 배운다. “클리셰 되기를 거절하는 순간, 더 이상 시선의 대상이기를 원치 않고 대신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그 순간” 클레오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행복해지는 것을 느낀다. 불안과 행복의 출처를 향한 작가 아녜스 바르다의 선택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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