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기정다운’ 아름다움

김기정, 바람의 흐름, 2018, 마커, 109×79㎝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뮤지션이, 꽤 긴 시간 방황한 끝에 ‘한번뿐인 인생, 나답게 살자’는 답을 찾았다는 말을 전한다. 그 이야기를 듣던 한 패널은 직장생활 10년이 흐르는 동안, 조직 안에서 점점 나다운 면이 깎여나가는 것을 느낀다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관계 안에서 나답게 사는 일은 왜 쉽지 않을까.

‘기정다운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 김기정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다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8세 때, 발달장애와 함께 선택적 함구증 진단을 받은 그에게 어머니는 음악과 미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예술이 불안장애의 일종인 선택적 함구증을 완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마커로 그림을 그릴 땐 한 줄 한 줄 얇게 칠해나가다 보니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몇 달씩 걸렸어요.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볼 땐 답답했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인내가 없으면 그릴 수 없는 그림이잖아요.” 마커로 그린 ‘바람의 흐름’에 대한 어머니의 말씀은, 예술가의 덕목을 환기시킨다.

그는 “크건 작건, 복잡하건 단순하건 아주 공을 들여 오랫동안 성실하게 그림을 그린다”. 좁은 형태도, 넓은 면적도 작은 붓으로 오래도록 채워나간다. 작은 붓질이 성실하게 면을 만들 때, 어떤 다른 계산도 침입하지 못하는 촘촘한 시간 위로 정갈한 집중력이 배어나온다. 그의 그림은 깨끗하다. 그 그림 앞에서 습관적으로 그림의 주제, 개념,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는 나를 발견하고 민망해졌다.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기든, 그 흐름을 거스르든, 그 선택의 이유가 나로부터 비롯될 수 있기를, 행복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김기정의 그림 앞에서 희망해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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