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홍이현숙,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7분47초

“거기를 살살 만져봐요. 보드랍게. 그리고 손을 조금 위로 올려서 오른쪽 무릎 전체 동그란 면을 더듬다보면 다리가 접힌 부분에 생긴 옷 주름 세 개가 있죠? 거기를 선 따라 하나하나 엄지, 검지로 밀면서 살짝 만져봐요. 약간 까슬까슬하죠?”

홍이현숙은 서울 북한산 승가사 108계단을 오르면 그 끝에서 만날 수 있는 마애여래좌상을 목소리로 만져본다. 촉각의 경험은 마치 구전설화처럼, 경험을 간직한 자의 목소리를 따라 다음 사람에게 전해진다. 목소리의 안내를 받으며 5m에 달하는 부처님을 눈으로 만지는 사이, ‘왼쪽 옆구리에 불상을 새긴 채 웅크리고 있는 뿔 잘린 장수풍뎅이바위’는 배경으로 물러서고,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 양식이 형식화되고 도식화된 측면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초기 불상’이라는 학자들의 연구는 페이지를 넘긴다.

“햇볕이 아주 따습고, 그리고 돌기는 까끌까끌하니 좋아요.”

시간의 정질이 다듬었을 석공의 온기와 수선의 거친 세월을 훑는 작가의 목소리가 불상의 무릎 근처를 맴돌 때, 오른쪽 무릎 아래 땅으로 온전히 향하지 않은 항마촉지인에 눈길이 멈춘다.

“이 자리에서 일체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죽는다 해도 일어나지 않겠다.”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든 석가모니 앞에 등장한 마왕 파순이 그의 수행을 방해하기 위해 내세운 것은 오감이 주는 쾌락의 세계다. 쾌락을 구하지 않는 자에게 그것은 유혹조차 될 수 없으니,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석가모니를 향한 파순의 유혹은 실패로 끝났다.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의 유혹을 떨치고 정각을 이루었음을 대지의 신이 증명하는 순간이 담긴 수인 앞에서, 감각의 세계가 던지는 지식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는 머뭇거릴 뿐이니 깨달음은 요원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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