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호 추 니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2017~, 다양한 비디오 포맷, 편집 알고리즘 cdosea.org

a는 고도·무정부주의, b는 버펄로, c는 원·부패, d는 쇠락, e는 전염병·회피, f는 허구·마찰·숲, g는 유령·유령작가, h는 인본주의, i는 정체성, j는 해파리, k는 친족, l은 가독성, m은 만달라, n은 국가, o는 바다, p는 정치, q는 여왕.

 

싱가포르 작가 호 추 니엔은 라틴 알파벳 26개로 시작하는 단어와, 각 단어로부터 떠올린 텍스트를 동남아시아 관련 5000여개 영상 및 음악과 조합해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을 편집했다. 비평사전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26개의 알파벳을 하나씩 클릭하면 관련 키워드, 텍스트를 읽는 내레이션 위로 시청각 자료가 흐른다. 동일한 알파벳을 클릭하더라도 그때마다 내레이션의 문장과 속도가 변하고, 영상과 음악이 변한다. 비평사전의 시스템에 업로드한 원소스를 자동 편집하는 알고리즘이 계속 업로드되는 자료를 활용하여 무한대에 가까운 조합을 내놓는다. 데이터베이스 내러티브에 의지해 단어의 정의를 확장시키는, 완성될 수 없는 사전이다.

 

실시간으로 편집되는 비평사전 속 개념 정의는 국가가 만들어낸 국가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정의, 정리된 역사가 누락시킨 정의에 가깝다. ‘동남아시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의심 위로 지워진 정의가 배회한다. 이 알고리즘은 언젠가 역사를 정리한 자들의 힘을, 정의 내린 자들의 힘을 무화시킬까.

 

정체성·지역·세대를 정의 내리고 경계 짓는 일은 모호하고, 폭력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유용하다. 작가는 이 키워드들이 불확실하고 애매한 것들, 자기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은 cdosea.org에서 볼 수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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