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무엇이 생필품인가

카미유 왈랄라, 슈퍼마켓으로서의 선물가게, 2021 ⓒ런던디자인미술관, 카미유 왈랄라

“무엇이 생필품인가.”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상업시설 외에는 모두 문을 닫아야 했던 영국에서는 코로나19 규정에 따라 박물관과 미술관 역시 모두 문을 닫았다. 피트니스클럽, 미용실, 펍 등 몇몇 시설들이 영업을 허가받은 지금도 생필품과 관계없는 업종으로 분류된 미술관, 박물관은 5월19일까지 문을 열 수 없다.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응축된 작품을 서비스하는 전시장은 왜 생필품 유통공간이 아니라고 규정하는가. 런던디자인미술관과 작가 카미유 왈랄라는 미술관의 아트숍을 ‘생필품 유통의 장’ 팝업 슈퍼마켓으로 바꾸어 문을 열면서 이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창의력은 필수적이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슈퍼마켓에서는 신진 예술가 10명이 디자인한 케이스에 담긴 쌀, 커피, 차, 마스크, 오트밀, 세제, 파스타소스, 화장지, 강장제 등 생필품을 예술가의 스페셜 에디션으로 판매한다. 왈랄라는 “슈퍼마켓은 디자인미술관을 지원하는 측면뿐 아니라, 새로운 플랫폼을 확보한 10명의 뛰어난 젊은 예술가들에게 주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면서 슈퍼마켓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위한 프로젝트에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작품활동이 삶의 이유이고 생계수단인 예술가들이 작품을 보여줄 수도, 공동작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을 힘겨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예술 창작’은 필수적인 활동이 아니라는 사회의 판단은 이들에게 다른 맥락에서 고민과 좌절을 안겨준다.

 

“이 설치작업은 우리가 무엇을 구입하고, 누가 이익을 얻고, 무엇을 필수라고 여기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런던디자인미술관 디렉터인 팀 말로의 설명에서 위기의 시대가 환기시키는 인간의 가치관, 사회적 합의와 선택을 되돌아본다.

 

4월21일 문을 열어 25일까지 운영하는 슈퍼마켓의 생필품은 미술관과 미술관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하며, 이미 대부분의 제품은 매진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