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돈쭐을 내주자’

요즘 누리꾼들 사이에서 ‘돈쭐을 내주자’는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배고픈 학생에게 선행을 베푼 치킨집 사장이 알려지면서다. ‘혼쭐’에서 온 말로, 가게가 잘되도록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 선행은 일종의 마중물이 되곤 한다. 더 많은 식당들이 이런 좋은 일에 나설 것이다. 좋은 일이다. 다만 평소에 이런 좋은 도움을 주는 식당이 많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한국 뉴스만 검색해도 꽤 흔한 일이다. 외국 사례는 어떤가 하고 일본의 뉴스를 검색해보니, 나라현의 ‘겐키카레’라는 식당이 아주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손님이 식사를 하고 ‘미래 티켓’이라 이름 붙인 식권을 사서 벽에 붙여 두면 배고픈 아이들이 그 후원을 받아 카레를 사먹는다. ‘미래’라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 아닌가. ‘히미쓰 기지’라는 식당은 노숙인, 부랑인을 위한 식사 후원사업을 한다.

 

선행과 후원은 어떤 점에서는 이렇게 한 단계, 한 마디(節)를 거쳐가는 게 좋을 때가 있다. 직접적인 후원은 후원자의 만족감을 더 높여주는 순기능은 있지만, 대면하지 않는 보편적인 기부가 어쩌면 후원의 본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밥 한 그릇 티켓을 사서 후원하는 ‘미래 티켓’ 방식은 여러 장점이 있다. 평소 이런 사업을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타인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인다는 소박한 감정이 작동한다. 앞서 든 치킨집 사장님의 선행이 돋보인 것도 음식이 갖는 힘이다. 인간은 유독 먹는 일에 깊은 감정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를테면 3일 굶으면 군자도 담을 넘는다거나, 아기가 먹을 우유를 훔친 가장이 뉴스에서 크게 취급되고 동정을 받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만약 옷가지나 유모차를 훔쳤다면 뉴스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장발장이 빵을 훔치지 않았다면, 소설은 공감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외국의 다른 사례 중 이탈리아의 카페 소스페소라는 소박한 나눔 관행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누군가가 한 잔 값을 더 치러서 누구라도 돈 없는 이가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관습이다. 커피는 이탈리아에서 일상의 필수품이어서 이런 제도가 생겼다. 소스페소란 ‘예비된, 미뤄둔 것’이란 뜻이다. 앞서 일본 식당의 티켓과 비슷하다. 대상을 지정하지 않아, 필요한 이가 이용할 수 있다. 이탈리아 얘기에 한마디 보태자. 이탈리아의 많은 공공식당, 즉 대학 구내식당이나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식당 등에서는 배고픈 이는 누구든 와서 식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빵과 물을 무상 제공한다. 이 두 가지는 일종의 공공재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치킨집 사장과 미래 티켓, 카페 소스페소 모두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선행에 기대지 않으면 배고픈 이들 누군가는 굶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 몇 대 강국이니 하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결식아동 얘기를 한다. 눈먼 돈이 굴러다니는 세상이라는데, 아이들 밥조차 제대로 먹일 수 없는 나라라니.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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