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NFT’와 예술 이후의 예술

그라임스의 디지털 그림 War Nymph. @Grimezsz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는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이다. 돈이나 주식이 액면가와 수량이 같다면 대체(교환) 가능한 것과 달리 NFT는 그렇지 않다. 디지털 콘텐츠마다 각각 가치가 다른 고유한 인식값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NFT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소유에 관한 한 배타적 독점권을 지닌다. 블록체인상에 저장되기에 실물이나 원본 파일이 없어도 NFT가 입증해준다. 따라서 NFT는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세상에서 단 하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인증서 역할을 한다.

 

생소하던 NFT의 존재가 미술계에 알려진 계기는 지난 11일 진행된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이다. 디지털 아티스트인 마이크 윈켈만의 한 디지털 콜라주 작품이 NFT 사상 최고인 약 786억원에 팔리면서 이목을 끌었다. 비플의 작품은 토큰화된 디지털 자산에 미술이 접목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여자친구인 가수 그라임스의 그림도 NFT를 말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사례이다. 최근 그의 작품 10점이 20분 만에 65억원에 모두 팔려 화제가 됐다.

 

컴퓨터로 그리거나 원작을 스캔받아 디지털화한 뒤 고유한 블록체인 암호화를 덧붙인 이미지일 뿐이지만 NFT 적용 그림 뒤에는 희소성과 화제성, 유일성에 유명인들의 명성이 더해진 소장가치가 놓여 있다. 소장가치는 작품가와 비례한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관심 대비 NFT 기술을 토대로 한 그림에선 곧잘 예술성이 누락된다. 비플의 이미지 조각 모음이나 창을 들고 있는 열댓 명의 천사들이 등장하는 그라임스의 디지털 그림이나 얼마나 예술적인가는 논의에서 열외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혁신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로 예술 유통 영역을 확장하고 전통적 미술품 거래 방식의 틀을 깼다는 시각이다. 예술작품 생산의 역사에서 중요한 내러티브의 연속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계의 주목도도 당분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NFT 그림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력화된 채 자유롭게 왕복하는 작금의 예술 흐름을 관통한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동시다발적 유효한 가시성을 지님에도 실체가 담보되지 않은 미지의 대륙으로까지 예술을 옮겨 놓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NFT 미술의 등장이 르네상스 이후 600년의 역사와 결별하며 전혀 다른 예술시대, 예술 이후의 예술을 선언한 1960년대처럼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마저 담보하리라는 예상은 되지 않는다. 예술성을 논하기엔 역부족인 작품이 드물지 않은 현실과 금전적 가치만 좇는 현상을 고려하면 NFT를 통한 미술사적 맥락의 전환은 오히려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