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국민화가’ 박수근에 대한 예우

‘국민화가’는 많은 이들에게 폭넓은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미술인에게 주어지는 호칭이다. 노르웨이의 뭉크를 비롯해 스페인의 고야, 체코의 알폰스 무하, 프랑스의 밀레, 네덜란드의 베르메르 등이 해당된다.

 

한국에도 국민화가가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박수근이다. 한국 현대미술 100년에 있어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꼽히는 그는 애옥살이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은 채 삶과 예술의 긴밀함을 독특한 조형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근대미술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박수근의 고향인 강원 양구군은 그의 예술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2년 박수근의 생가 터에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지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민화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미술관 사정은 좋지 못했다. 내용은 초라했고, 열악한 군 재정으론 작품 한 점 구입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럼에도 참새 낟알 모으듯 한두 점씩 꾸준히 작품을 사들였다.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을 비롯한 일부 뜻있는 이들의 도움으로 차곡차곡 소장품이 쌓였다. 개관 20년을 맞는 현재 미술관 소장품 목록에는 유화를 비롯해 드로잉, 판화 등을 포함한 작품 883건 951점이 올라있다. 오직 예술의 숨결을 고장에 불어넣겠다는 의지로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14일 박수근미술관에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일부인 ‘아기 업은 소녀’(사진) 등의 유화와 드로잉 18점이 기증되면서 소장품은 더욱 풍성해졌다. 하나같이 박수근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작품들로, 이건희 전 회장의 유족 측이 기증품의 정체성은 물론 미술관의 시설 및 운영 노하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미술관의 질과 규모 모두 인정한다는 뜻이다.

 

박수근미술관은 기증의 의미와 작품의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지난 6일 ‘박수근미술관 아카이브 특별전’을 열었다. 그러자 연일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방문객 수는 기증 전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소위 ‘이건희 컬렉션 효과’로 박수근미술관이 주목받으면서 일각에서는 미술관을 ‘도립’이나 국립 미술관 ‘분원’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기명 미술관인 박수근미술관이 도립 혹은 분원으로 격상될 경우 성격을 달리하는 기관 특성상 오히려 그동안 누적된 역사성과 독자성·고유성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다만 독립된 ‘국립 박수근미술관’으로 격을 높이는 방안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국립 피카소미술관이나 국립 샤갈미술관같이 타국 작가에게까지 존중을 표하는 사례를 생각한다면 우리도 이젠 국민화가라는 지위에 걸맞은 예우를 보여줄 때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