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예술인 복지, 온 길과 갈 길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됐다. 예술인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이 제기된 1980년대 이후 약 30년 만에 이룬 결과다. 이 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 지원을 통한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증진과 예술 발전에의 이바지를 목적으로 한다. 같은 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졌다. 예술인 복지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다. 예술인의 사회보장 확대 지원을 비롯해 복지 지원, 권익보호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담당한다. 예술인복지법의 의미는 법을 통해 예술인을 정의하고 그들의 권리와 지위를 처음으로 제도화했다는 것에 있다. ‘예술을 업(業)으로 삼는 예술인’을 법이 정하는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을 도모하며, 대국민 .. 더보기
독백에 머문 ‘부산비엔날레’ 비엔날레는 응집력과 설득력을 지닌 자기 지시적 언어의 집합체인 ‘담론’을 통해 지구촌 공동체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동적 파괴의 모델로서 자리해야 한다. 대중과의 호흡을 전제로 복잡한 사회 속 틈을 제시하고, 인류 앞에 놓인 과제들을 ‘공동의 목소리’로 혁파할 수 있는 ‘정지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문화시설인 미술관 전시와 다른 비엔날레만의 특징이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한국의 거의 모든 비엔날레(3년마다 개최되는 트리엔날레 포함)는 담론 생성에 무관심하거나 능력이 안 된다. 20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격년으로 열리지만 대부분은 본령인 현실과 제도에 대한 비판적 논쟁의 장과는 무관하다. 변별력 없는 광경에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는 공허한 관변행사이자 지자체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 해도 과언이 아.. 더보기
듣기 싫은 것을 말할 권리 윤석열 대통령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늘 ‘자유’를 강조해왔다. 그들의 여러 말과 글을 보면 자유 신봉자처럼 비칠 정도다. 실제 윤 대통령의 연설에서 가장 자주 출현하는 단어는 자유다. 지난해 6월의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부터 지난달 20일 진행된 유엔총회 연설까지 총 4번의 연설에서 자유는 모두 111번이나 언급됐다. 박 장관은 지난 5월 장관 취임식에서 ‘자유정신’을 내세웠다. 그가 말한 자유정신은 기존 가치목록으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자유의 쟁취로 풀이된다. 문화예술 주무부처의 장으로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흔들림 없이 행동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창작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 장관의 자유에 대한 애착은 과거 글에서도 곧잘 발견된다. 중앙일보 대기자 시절인 2019년 .. 더보기
기대 못 미쳐, 기로에 선 키아프 쇄국은 깨졌다. 글로벌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향후 어떤 설계와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글로벌 페어로 자리할 수도, 아니면 외국 유수 페어의 위성 행사로 전락할 것이 자명해졌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사진)의 공동개최 얘기다.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지난 5일과 6일 각각 폐막했다. 6일 주최 측에 따르면, 두 행사를 찾은 관람객은 각 7만여명으로 나타났다(누적방문 기록 제외). 매출 규모는 프리즈의 경우 수천억원에 달하는 반면, 키아프는 지난해 수준인 70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프리즈의 10분의 1이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펼쳐진 ‘한 지붕 두 가족’ 행사는 프리즈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만큼 명암은 뚜렷했다. 프리즈는 본토인 런던 못지않은 성과에 놀라움.. 더보기
국립현대미술관 ‘갈지자 행보’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50주년 기념전으로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마련했다. 한국 근현대기 100년사를 다룬 3개관 통합기획의 방대한 전시였다. 그러나 윤범모 관장 임명 첫해 야심차게 진행한 이 전시는 얼마 못 가 진·위작 및 복제본 의혹이 불거졌고 미술관은 공신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 당시 덕수궁관에 전시된 만해 한용운의 회갑연 시는 인쇄 복제본이었으나 외부에서 의문을 표하기까지 미술관은 까맣게 몰랐다. 독립운동가의 글씨 또한 위작 의심을 받아 전시 중 교체됐다. 이로 인해 도록까지 다시 제작해야 했다. 국립미술관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사진)는 채색화와.. 더보기
세계에 한국 미술을 심는 작가들 한국의 국공립 미술관은 언제부터인가 시장에서 몸값 높은 작가들의 알리바이나 만들어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비엔날레의 다수는 서구의 방법론을 끝없이 답습하는 낡은 행사로 추락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숫자만 많지 의미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우수한 시각 예술가를 양성할 수 있는 정책마저 변변한 게 없다. 비참함을 억누르곤 얼마나 가난한지를 증명해야 알량한 몇 푼의 지원금을 쥘 수 있고, 취향에 읍소하는 ‘상품 생산자’들을 세금으로 뒷받침하는 게 예술경영이라 여기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한국 미술의 건강한 성장을 견인하는 데에는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형식과 언어로 무대를 확장해가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다. 미술계에선 흔히 양혜규, 신미경, 서도호, 방혜자, 김수자, 이불 등을 꼽는다. 그러나 세계.. 더보기
기대 밑돈 ‘제의의 장’ 올해로 59회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2022·4·23~11·27)를 찾았다. 꼬박 16시간을 날아왔다. 그러나 막상 둘러본 비엔날레는 기대에 못 미쳤다. 세계를 보는 관점은 다각적이지 않았고, 새로운 조형미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행사의 두 기둥인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 모두 그랬다. 다만 방향성만큼은 놀랍도록 뚜렷했다. ‘집요함의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작품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했다. 바로 ‘여성’이다. 일단 본전시에 참가한 58개국 213명의 작가 중 여성이 90%를 차지했다. 과거엔 10~30% 내외에 불과했다. 여기에 베니스 비엔날레만의 특징인 황금사자상도 여성 작가들에게 돌아갔다. 영국관 대표작가 소니아 보이스가 국가관 부문을, 미국 작가 시몬 리가 본전시 부문을 수상했다. 흑인 여성.. 더보기
100일의 저항, 카셀 도큐멘타 카셀 도큐멘타는 세계적인 미술행사다. 나치 정권의 만행에 대한 성찰 차원에서 시작됐다. 독일의 중부 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린다. 127년이라는 장구한 발자취를 지닌 베니스비엔날레에 비하면 절반의 역사에 불과하지만 권위 면에선 그 이상이다.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이슈들을 다양한 예술언어로 풀어내 동시대 미술의 풍향계로 불린다. 카셀 도큐멘타는 사회와 예술의 관계 속 급진적 실험성이 특징이다. 오는 6월18일 개막해 100일간 이어지는 제15회는 예술감독부터 색다르다. 2019년 선임된 루앙루파(ruangrupa)는 200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설립된 비영리 예술 공동체이자 아시아 최초의 총감독이다. 2002년 나이지리아 출신 기획자 오쿠이 엔위저를 제외하곤 백인 남성이 거의 독식해 왔다는 점에서 .. 더보기
빈곤한 문제의식이 문제다 유인촌은 빼어난 재능을 지닌 연기자였다. 1974년 배우생활을 시작한 이래 장수프로그램이었던 를 비롯한 다양한 드라마와 연극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역사 다큐멘터리 MC로 활약하며 쌓은 지적인 이미지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10여년간 이명박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여러 자리를 꿰찼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인수위원을 지냈으며, 한나라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나선 2007년엔 문화예술정책위원장 직무를 대행했다. 이명박 당선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사이 문화예술 관련기관 수장자리도 두루 거쳤다. 2004년 국내 최대의 광역 문화예술지원 기관인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맡았고, 2008년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역임했다. 201.. 더보기
참으로 괴이한 미술풍경 ‘오픈런(open run)’을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강원랜드다. 도박장 문이 열리는 아침만 되면 수백 명이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뛴다. 슬롯머신이나 카드게임을 할 수 있는 테이블에 먼저 앉기 위해서다. 미술계에도 오픈런이 있다. 바로 미술품을 사고파는 장터인 아트페어다. 이곳에서도 전시장 내 마련된 갤러리 부스를 향해 줄달음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난해 개최된 한국국제아트페어와 서울아트페어는 물론 지난 20일 막을 내린 화랑미술제에서도 오픈런은 재현됐다. 하지만 이는 한국만의 괴이한 미술풍경이다. 해외 어느 아트페어를 가봐도 그림 사겠다고 단숨에 내처 달리는 이들은 거의 없다. 차분히 입장해 관람할 뿐 양손에 VIP카드와 지갑을 쥔 채 필사적으로 질주하는 모습은 상상.. 더보기
‘거장’ 김건희와 안상수의 망언 소위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부여된 예술적 재능으로 동시대 인간 조건과 진실한 삶에 대해 탐구하며,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공존의 문제를 논했다는 데 있다. 선한 영향력을 담보한다는 점에서도 분모가 같다. 박수근이 그랬고, 장욱진이 그랬다.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백남준과 봉준호, BTS도 마찬가지다. 김건희는 사업가다. 외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통해 수익을 추구해온 이다. 대형 상업전시를 기획하는 회사의 대표일 뿐, 그의 남편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나오기 전까진 미술계 내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던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국민의힘 인천공동총괄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상수 전 인.. 더보기
‘문화권력 갑질’ 진실이 궁금해 지난 24일 국립현대미술관(사진) 공무원 노동조합은 최근 단행한 내부 인사 발령에 항의하는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논란이 된 성명서에는 인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특정 학예연구사들을 기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발령했으며,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단행되었다는 주장이 담겼다. 노조는 이번 인사 조치가 일명 ‘갑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보복 차원으로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앞서 노조는 지난해 말 ‘미술관 내부 간부들의 갑질 근절과 근로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한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 미술관 관장과 학예연구실장 등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을 접수받아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윤범모 관장은 노조 지부장과의 면담을 통해 내부 갑질 및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며 직원들의 입장에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