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예술인 복지, 온 길과 갈 길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됐다. 예술인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이 제기된 1980년대 이후 약 30년 만에 이룬 결과다. 이 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 지원을 통한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증진과 예술 발전에의 이바지를 목적으로 한다. 같은 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졌다. 예술인 복지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다. 예술인의 사회보장 확대 지원을 비롯해 복지 지원, 권익보호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담당한다.

예술인복지법의 의미는 법을 통해 예술인을 정의하고 그들의 권리와 지위를 처음으로 제도화했다는 것에 있다. ‘예술을 업(業)으로 삼는 예술인’을 법이 정하는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을 도모하며, 대국민 대상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재단 설립의 의의다.

올해로 예술인복지법 시행 및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10년이 됐다. 그동안의 성과는 적지 않다. 이젠 예술인도 법에 따라 산재보험, 고용보험, 생활안정자금, 의료비 지원 등 정부가 지원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결과물이 아닌 창작 준비 과정까지 뒷받침되며(창작준비금지원 사업), 자신의 전공을 활용한 일자리 창출도 용이해졌다(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지난 9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예술인의 권익 보호도 한층 강화됐다. 예술지원사업 내 차별 대우는 물론 사업 선정 과정에서의 명단 작성 등 공정성 침해 행위가 금지되었고, 표현의 자유 침해나 성희롱·성폭력 피해 구제 통로가 생겼다.

이처럼 지난 10년은 국가 사회보장 체계 내 예술인들의 취약성을 발굴·보완, 보다 촘촘하게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재단이 걸어온 120개월의 발자취는 과거 대비 훨씬 견고해질 수 있었던 예술인 복지의 과정과 오늘을 보여준다. 하지만 과제도 산적해 있다. ‘시혜’의 인식에서 ‘권리’로의 패러다임 전환,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함께 예술노동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공적연금처럼 낮은 가입률의 사회보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무색하게 하는 검열행위와 표현의 자유 침해, 암암리에 진행되는 예술계 내 비판적 인사 배제(사실상의 블랙리스트)도 여전하다.

취미나 여가로 활동하는 이들의 유입에 따른 한정된 복지 예산의 누수 현상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코로나19처럼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를 대비한 예술인 위기 진단 및 신속 지원 시스템 구축 또한 서둘러야 할 현안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열악한 근무 환경 역시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재단의 역할과 예산은 비대해지고 있는 반면 운영비는 쥐꼬리만 한 데다, 예술인 지원의 뿌리가 되는 ‘예술활동증명’을 마친 예술인은 15만명이 넘지만 이들을 응대하기 위한 직원은 43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중 인력난은 심각하다. 일할 사람은 그대로인데 저임금에 노동 강도는 나날이 높아져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많다. 이들에게 보편적 삶의 질이란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예술인들마저 ‘예술인복지재단이야말로 복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현실에선 예술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명료히 이식될 수 있도록 한다는 정부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예술인들의 신분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인 복지 10년, 재단의 현황을 포함한 정책의 현재를 재점검하고 향후 10년을 준비할 시기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연재 |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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