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기대 못 미쳐, 기로에 선 키아프



쇄국은 깨졌다. 글로벌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향후 어떤 설계와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글로벌 페어로 자리할 수도, 아니면 외국 유수 페어의 위성 행사로 전락할 것이 자명해졌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사진)의 공동개최 얘기다.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지난 5일과 6일 각각 폐막했다. 6일 주최 측에 따르면, 두 행사를 찾은 관람객은 각 7만여명으로 나타났다(누적방문 기록 제외). 매출 규모는 프리즈의 경우 수천억원에 달하는 반면, 키아프는 지난해 수준인 70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프리즈의 10분의 1이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펼쳐진 ‘한 지붕 두 가족’ 행사는 프리즈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만큼 명암은 뚜렷했다. 프리즈는 본토인 런던 못지않은 성과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토종 아트페어인 키아프는 씁쓸함을 떨치지 못했다. 뜻밖의 실적에 프리즈는 함박웃음을, 키아프는 별다른 실속 없이 체급 차이만 느낀 결과지를 받아들어야 했다. 실제로 규모나 권위, 역사 면에서 세계 최대의 미술장터인 ‘아트 바젤’에 미치지 못하는 프리즈였음에도 키아프는 그나마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프리즈는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였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거장은 물론 미술사적 의미에 무게를 둔 작품들이 즐비했다. 비록 ‘그림 장사’하는 곳이 아트페어이긴 해도 프리즈는 작품성이야말로 관객 동원과 구매력을 유발하는 기본 요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키아프는 이전과 유사한 전개를 보였다. 올해 역시 몇 년째 우려먹고 있는 단색화와 유치찬란한 시장미술 작품들을 여기저기 내걸었다. 일부를 제외하곤 예술성보단 ‘장식’에 머무는 ‘상품’들이 곳곳에 포진됐다. 한마디로 신선도와 독자성, 정체성, 작품 가치 등에서 모두 프리즈라는 대형 프랜차이즈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내수용’이었다. 키아프 측이 그토록 강조해온 우리나라 작가 및 작품의 해외 미술계 소개라는 성과 또한 가시적이었다 말하기 어렵다. 설사 그것이 유효했다손 쳐도 해외 작가 작품을 한국에 각인시킨 프리즈에 비하면 초라할 수밖에 없다.

프리즈와 키아프의 공동개최는 오히려 질적 성장을 도외시한 한국 미술시장의 실체를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말았다. 두 개의 아트페어를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공동티켓으로 합작의 의미를 살리려 했으나 키아프만의 변별력이 실종된 현실은 관람객의 호응도를 떨어뜨렸고, 한국 컬렉터들의 해외 갤러리로의 이동을 우려하는 지경까지 초래했다. 

키아프는 이제 도약 아니면 도태의 기로에 섰다. 당연히 도약을 선택할 터, 그렇다면 국내용에 그친 페어 전략을 글로벌 수준에 맞게끔 개편해야 한다. 키아프 전체를 총괄하는 기획의 전문성 제고를 비롯해 체계적인 마케팅 방식 도입, 후원 기업의 확장 등 기타 과제도 만만치 않다. 장사가 아닌 사업가라는 마인드 개선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가와 작품을 새롭게 발굴·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해외 갤러리들을 키아프에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콘텐츠 부재의 심각성이야말로 오늘의 키아프를 호졸근하게 만든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연재 |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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